사랑받을 권리 - 상처 입은 나를 치유하는 심리학 프레임
일레인 N. 아론 지음, 고빛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에곤 쉴레의 문제적 그림을 표지에 넣은 이 심리치유서는 날카로우면서도 친절합니다. '날카롭다' 함은 흔히 간과하기 쉬운 부분을 콕 집어 환기시키고 정직하게 자기 점검을 하도록 만든다는 뜻입니다. '친절하다' 함은 독자 자신이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안내하고 사소한 데까지 꼼꼼하게  단속한다는 뜻입니다.

2. 이 책은 '못난 나' 라는 개념을 줌심으로 '순위 매기기'와 '관계 맺기'라는 대칭성을 틀 삼아 그 내용이 전개됩니다. '못난'이란 말은 undervalued를 의역한 것인데 어의를 그대로 따르면 '저평가된', '과소평가된' 이란 뜻이지요. '못난'이란 말은 태생이 그렇다는  뉘앙스를 풍기므로 썩 좋은 번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직역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군요.

'순위 매기기'는 ranking의 번역입니다. 이는 권력과 직결되는 개념으로서 수직(차등)적 서열화, 자타의 불연속, 경쟁과 승부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더 적절한 번역어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이 역시 아쉬움을 남깁니다. '관계 맺기'는 linking의 번역어입니다. 이는 사랑과 직결 되는 개념으로서 수평(대등)적 소통, 자타의 연속, 공존과 화해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이 세계는 ranking 과 linking의 대칭성 안에서 굴러갑니다. 문제는 그 둘 사이의 역동적 균형입니다. 좀 더 현실적으로는 현 세계의 편향을 감안할 때 후자에 대한 강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undervalued self 라는 용어 자체가 ranking과 연루된 문제 제기이기 때문입니다. 

3. '못난 나'를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여섯 가지 방어기제가 생동감 있게 제시되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내면의 비판자, 그리고 보호자-학대자란 두 힘에 이끌려 우리 삶을 망치는가 조근조근 이야기해주는 것이 이 책의 큰 매력입니다. 

우선 그 여섯 가지 방어기제. 보통 이런 유 책들의 교과서적 언급은 수십 가지를 나열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못난 나'라는 문제에 맞추어 최소화 하기, 외부 요인 찾기, 경쟁에서 빠지기, 과도하게 성취하기, 부풀리기, 투사하기의 여섯 가지에 집중합니다. 매우 적절한 판단입니다. 다만 최소화 하기와 경쟁에서 빠지기, 외부 요인 찾기와 투사하기, 과도하게 성취하기와 부풀리기의 짝이  성립하고 각각 어떤 유형의 병리와 연결되는가, 까지 나아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면의 비판자 개념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입니다. 매우 인상적인 것은 바로 보호자-비판자라는 개념이지요. 이런 형용모순의 표현 자체도 그렇지만 내용면에서 그 동안 다른 이론가나 임상가가 쓰윽 지나쳐버린 것을 돋을새김으로 드러내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이를 임상 현장에서 "애지중지 학대"라는 용어로 강조했는데 그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못난 나'를 더욱 '못나게' 하는지 선명하게 볼 수 있어 도움이 되었습니다.

4. 읽어가면서 내심 어떤 기대가 있었는데 끝내 거기까지 이르지 못한 아쉬움이 또 하나 있습니다. 개인적 영역을 벗어난 너른 지평이 제시되지 않은 것입니다. 예컨대 동조할 때 유의사항을 보면, "자신의 경험으로 화제를 돌리지 않는다." 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그 표현을 해 올 때 대뜸 "나도 그래." 하는 것처럼 상대를 허망하게 하고 어쩌면 모욕하는-'다들 그러고 사는데 너만 징징대는거 아냐?'-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거기가 끝은 아닙니다. 이 주의는 다만 동조의 단계에 국한되는 덕목일 뿐입니다.

한 개인이 자신의 문제에서 놓여나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가는 데는 반드시 사회적 맥락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문제의 보편성에 눈을 뜨고 자신의 고통을 상대화함으로써 치유의 연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자아 또는 영적 자아로 자신의 존재를 확산해 가는 것이지요.  이 부분에서 이 책은 다음 두 책과 더불어 읽으면 상호 보완이 되리라고 봅니다.

이미 제가 소개한 바 있는 책입니다. 하나는 미리암 그린스팬의 <감정 공부>이고 다른 하나는 크리스틴 콜드웰의 <몸으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지금까지 제 개인적 독서를 중간 결산하는 차원에서 말씀드린다면 이 두 책과 오늘의 <사랑받을 권리>를 합쳐 "치유 삼부작"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특별하게도 저자가 모두 여성입니다. 확실히 이 분야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지론이기도 합니다만.^^

<감정 공부>는 유대-그리스도교적 전통을 지닌 바탕 위에 인도의 전통 사상과 위빠사나 수행을 결합하여 깊이 있는 통찰과 실천 양식을 빚어낸 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가장 두드러진 책입니다. <몸으로 떠나는 여행>은 중독 문제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몸 중심의 심리학을 하는 방향성과 관련된 것일 뿐 보편적  타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만큼 불교적 사유가 깊게 녹아 있는데 심지어 원효사상과 근접한 통찰이 보일 정도입니다. 이 책 또한 사회적 함축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사랑받을 권리>는 프로이트-융 전승의 흐름에 서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구적 개인주의가 책 전반을 관류합니다.

5. 세 책을 마음의 갈래와 관련해 굳이 비교해 본다면, <사랑받을 권리>는 감정 또는 정서에, <감정 공부>는 의지에, <몸으로 떠나는 여행>은 이성 또는 의식에 더 깊은 강조점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 비교입니다. 

6. 곳곳에 보석 같은 통찰이 반짝이고 있는 것 또한 무척 유쾌한 보너스. 예컨대, "우리의 문제는 대부분 과거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데서 나온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능동적으로 배워야만 한다." 등.......그리고 극심한 가난, 잦은 이사가 트라우마가 된다는 지적. 특히 이 부분은 새삼스럽게 저를 화들짝 일깨웠습니다. 왜냐하면 오랜동안 제 자신이 깊이 침륜되어 있었던 문제인데 사실 이것에 주의를 깊게 기울이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7. <감정 공부>는 저자의 내공 때문에, <몸으로 떠나는 여행>은 내용의 함축미 때문에 거듭 읽어야 다가갈 수 있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랑받을 권리>는 이런 어려움이 거의 없어 한결^^편합니다. 일독 강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