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떠나는 여행 - 중독치유와 새 삶을 위한 몸 중심 심리요법
크리스틴 콜드웰 지음, 김정명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 2007년에 나온 책인데 저는 뒤늦게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선 자리에서 skim 할 때, 아, 이 책 만만치 않구나, 했습니다. 역시나 읽을수록 곰곰 생각하게 하는 바람에, 적어도 제겐 이 책이 최근 읽은 그 어느 책보다 무게가 있었습니다. 본문만으로 따지면 200쪽도 안 되지만 통독하는데 꽤나 긴 시간이 들었습니다. 한 문단에 해당하는 한 문장이,  한 chapter에 해당하는 한 문단이 도처에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이 책이 각별한 인연으로 엮인  연유를 두 가지 정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선은 제가 이 책을 단순히  지적인 차원에서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야겠습니다.  제 자신과 환우의 구체적 정황을 떠올리며 치유 차원에서 읽었다는 말입니다. 본문과 구체적인 사람을 일치시키며 읽었기 때문에 관통과 흡수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이 책에 담긴 사상과 내공이 가히 압도적인 측면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틱낫한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과 치유를 했다고 하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유장하고 해체적인 불교사상에다 여성 특유의 직관과 생명감각을 버무려 넣었습니다. 영어적 표현이 감당하지 못하는 내용을 담은 어휘가 출몰하는가 하면 고도로 절제된  분위기 가운데서도 화들짝 오감을 깨우는 묘사가 나타나 순식간에 핵심을 꿰뚫기도 합니다.

"세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엉덩이를 들어 올려 춤을 추어야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전광석화처럼 온 몸을 관통하는 지적 오르가즘이랄까....... 글쎄요, 물론 저만의 punctum일 수도 있습니다. 자크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사실 이런 순간에서 책(libre)은 텍스트(texte)가  되는 것일 테지요. 살아 움직이는 인연의 꽃을 피워내는 특이점이자 경계 사건입니다. 뜻하지 않은 은총이지요.  

2.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중독이란 중독성 물질을 복용하는 식의 행동 양태라기보다 우리 몸이 참다운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도록 그 직접경험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을 말한다. 어느 중독성 행태에서든 그 출발점은 우리가 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중독이란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경향성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지금 거대한 중독문명 한 복판에 살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끼들끼들 웃으며 허공에 붕 뜬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자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중독은 우리가 자기혐오라는 벌을 선고받고 복역하는 동안 위락용 영화를 계속 즐기도록 대형화면 TV를 감옥 속에 갖다놓은 것과 같다." 

준열하기 그지없는 비유입니다. 우리가 즐기고, 기대고, 그리워하는 수많은 감각이 실제 느낌이 아니라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래서 우리가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섬뜩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어떻게 나선구조 속에서 확대재생산 되는지 그 이치와 과정을  매우 함축적이면서도 세밀하게 그려 놓고 있습니다.

나아가 몸을 되찾는 일을 각성, 고백, 수용, 행위의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례까지 들어가며 조근조근 이야기하지만 언어의 깊이는 대단합니다. 부분 부분 모호한 표현이 없지 않으나 번역 문제도 적지 않은 만큼 독자가 행간을 살펴 읽으면 오히려 그래서 더 풍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인상적이었던 것은 중독과 치유 과정에서 호흡의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호흡의 멈춤을 어떻게 치유 과정 안에 위치 지을 수 있을까, 새로운 화두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 과정에 걸쳐 관통과 흡수 문제를 매우 감각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문제의식은 30년 이상 제 사색과 강의와 글쓰기를 이끌어 온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3. 요컨대 이 책은 인간인 한 본능적으로 그 앞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중독의 문제를 몸 중심으로 심도 있게 다룬 특별한 책입니다. 많은 분들이 "내가 중독하고 무슨 상관이람?" 하시겠지요.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은 그리 많이 팔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독은 이미 우리 안에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아니 중독은 우리를 넘어 범람하고 있습니다. 종당 중독은 중독 자체도 넘어서 문명을 깡그리 말아먹을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중독 문제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몸을 되찾는 일(Getting our boddies back: 이 책의 원제목)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몸을 되찾는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참된 생명감각을 되찾는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남은 단 하나의  선택입니다. 선입견 내려놓고 이 책을 찬찬히 읽어 끝에 이르면 저자의 마지막 말이  소리 없는 벼락이 되어 그대 가슴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계속 걸어라. 그리고 여러분이 어디쯤 있는지 찾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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