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생물학적으로 퇴화하고 인류의 목적이 사라지는 때가 언제인지 내다보는 예언을 한 오가논다족 추장 오렌 라이언스는 그 징조 중 하나로 아이들이 버려지고 무시될 것을 꼽았다.(폴 호컨 탄소라는 세계316) 내가 이른바 엡스타인 파일을 처음 접했을 때 대뜸 떠올린 말이다. 나는 이 정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침묵과 음모론 경계에서 주의 기울이며 살피고 있다.

 

트위터, 특히 외국인 계정은 난리가 났다. 묘하게도 우리나라 극우 애들 트위터 계정 여럿이 매우 흥분해서 이 이야기를 계속 떠든다. 페이스북은 특별한 한두 경우를 빼곤 괴괴하다. 사실관계에 유념하면서도 세계 돌아가는 이야기 기민하게 전해주던 지식인 대부분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재래식 언론도 대부분 무관심한 척한다. 희한한 일이다. 입대면 안 될 무슨 흑막이 있는지.

 

어제(213) 치 경향신문이 워싱턴 특파원 발로 비교적 긴 보도를 했으나 뭐 새로울 게 없다. 미성년자 성 착취라고 평평하게 언급됐을 뿐, 어떻게 얼마나 아이들이 버려지고 무시당했는지 더 깊은 내용은 암시된 바도 없다. 알려진 정보에 음모론도 섞였을 테고, 엡스타인 일방 계략에 당한 사례도 있을 테지만, 어떤 경우에든 아이들 문제를 이렇게 다루고 말아선 안 된다.


 

사실 저 예언에서 쓴 무시란 표현은 어떤 단어를 그렇게 번역했는지 모르나, 정확히 번역했다면 오늘날 지구에서 아이들이 당하는 탈취와 살해 상황을 미루어 볼 때 매우 미지근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라면 무시되는 일은 버려지는 일에 이미 낮은 단계로 포함되지 않나. 문맥을 고려해 의미와 표현을 고쳐 아이들 문제를 인류 생멸이 걸린 현안으로 삼아야 한다.

 

아이들이 우리 미래다, 뭐 이런 차원이 아니다. 탈취와 살해를 당하는 모든 인간 부류 가운데 아이들만큼 참혹하고 참담한 경우란 없다. 그들에게는 목소리가 존재론적으로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상식으로 보더라도 여성이 그들 목소리가 되어주어야 할 텐데, 내 경험상 여성 자신보다 먼저, 또 위에”-당연히 이래야 한다- 아이들을 두는 페미니스트를 본 적이 없다.

 

여성으로서 남성에게 탈취와 살해를 당하는 일이 범주적 중요성을 지닌다는 사고를 벗어나야 대승 페미니즘을 일궈낸다. 어른으로 사는 일은 자신과 같거나 더 높은 우선순위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실천하는 일이다. 그 어른 삶은 여성만 가능하다. 남성이 그럴 수 있었다면 세상을 지금처럼 망치지 않았을 거다. 남성과 싸우느라 여성이 아이들을 놓은 결과가 여기 닥쳤다.

 

이제 카이로스에 다다랐다. 여성, 그리고 여성 심장을 지닌 극소수 남성 어른이 아이들을 담론과 실천 고스락에 올려야 할 때다. 인간이 인간 아이들 그느르지도 못하면서 동물권 어쩌고 숲 어쩌고 바다 어쩌고 심지어 지구 어쩌고 하는 짓은 얼마나 신둥부러진가. 피눈물 흘리며 울부짖는 아이들 앞에 어미로 서 있어야 인간 최소한이나마 되지 않겠는가. 내일이면 이미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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