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소설이나 수필 같은 산문 문학 작품을 좀처럼 읽지 않는다. 특별한 의도는 없다. 어쩌면 운문에 더 매혹되기 때문이란 말이 그런대로 적합하다. 시집은 수백 권 샀어도 소설책은 몇 권밖에 사지 않았다. 심지어 노벨상에 빛나는 한강 책도 사지 않았다. 하물며 수필집이랴. 그런 내가 『아주 사소한 것들의 은하』라는 수필집을 사서 한 호흡에 읽었다. 이 무슨 일인가?
지난 10년간 내 공부는 작고 적은 또는 작고 적다고 여기는 존재와 사건에 잠겨 흘러왔다. “사소해서 위대하다.”에서 출발해, “소미심심(少微沁心)”, “소소심심(小少沁心)”, “섬밀(纖密)”, “곱촘하게”, “미미섬섬(微微纖纖)”, “미섬장엄(微纖莊嚴)”처럼 대부분 내가 새로이 만든 용어를 고갱이 삼아 깊어지고 번져갔다; 작고 적다 못해 없다고 몰아버린 것들에게까지 다다랐다.
이 공부 길과 『아주 사소한 것들의 은하』를 쓴 백윤경 작가가 한 말은 본성상 겹친다. “나는 거대한 우주의 근원인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 주목했다.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먼지들조차 ‘아주 잠시, 빛나는’ 소중한 존재임을 기억하고 싶었다. 나의 시간을 통과한 모든 존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지 않으면 안 되는 며리가 바로 거기 있었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백윤경은 일상에서 맺고 빚는 인연과 사건을 곱고 촘촘하게 톺아서 맑고 따스한 서사를 구성한다. 모퉁이 돌아갈 때마다 빛나는 문장 미학이 있어 잠시 숨을 고르고 소리 내어 읽어보고 간다. 내가 학문 차원에서 접근하고 숲이나 물 경험으로 나아간 풍경과 퍽 다르다. 내 글은 비문학이고 백윤경 글은 문학이다. 이 비대칭 대칭에서 낯섦은 눈부시다.
다 읽고 나면 거기 담겨 있지 않은 이야기가 꽹하니 떠오른다. 그 부재와 상실, 그리고 결핍이 그를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한 주목으로 이끌었다. 그 글에 담긴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벗들만이라면 이야기는 따스함과 그리움, 그리고 아픔을 넘어서지 못했으리라. 거기에 없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것들이 건네는 말 없는 말을 들었기에 그는 이문일심경(二門一心境)에 들었다.
나는 그에게 ‘없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것들’에 속한다. 김선우 운문 읽을 때는 ‘내 영혼과 포개 겹쳐 앉아 썼구나!’하고 느끼는데, 백윤경 산문 읽을 때는 ‘내 영혼과 쪼개 겹쳐 앉아 썼구나!’하고 느낀다. 같아서 다른 도반과 달라서 같은 도반은 현실 문성에서 같지 않으나 내게는 같다. 아주 사소한 것들의 은하에 푹 잠기려 나는 다시 『아주 사소한 것들의 은하』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