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백운천이 빚어낸 우이구곡(牛耳九曲)에 들어갔다가 집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탄다. 노약자석에 자리 하나 비었기에 앉는다. 맞은편 자리에 앉은 남자 사람이 내 옆자리에 앉은 두 사람에게 내가 앉기 전부터 뭔가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관심 두지 않아 잘 모르지만 나이 들어서 그렇게 함께 다니는 게 보기 좋다는 내용인 듯하다. 엄지척하면서 뭐라 되풀이해서 말하는데 행복’ ‘최고라는 낱말이 들린다.

 

두 사람 반응이 시큰둥해지자 그는 양쪽 출입문 가운데쯤 서 있는 30대 남녀에게 눈길을 준다. 여자 사람이 뭔가 조언하는 풍경을 보고 두 사람이 부부라고 단정했는지 마누라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황급히 손을 저으며 남매라고 하자 오촌 남매냐라며 농담으로 치부한다. 둘은 친남매고 누나와 남동생 사이이라고 정색하며 말하자 갑자기 흥미를 잃었는지 눈길을 다시 돌린다.

 

이번에는 한 정류장 지나 새로 들어온 20대 남녀를 훑어본다. 뭔가 옥신각신하는 듯한 분위기를 간파한 듯 이럴 땐 남자가 먼저 양보하고 좋게 말해야지라며 훈계한다.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은 자신들 대화를 이어가다가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여자 사람이 먼저 내린다. ‘거봐 삐져서 내리잖아라며 나무란다. 남자 사람이 집이 여기라 내렸다 하니 하릴없이 눈길을 거둔다. 그가 다음 시선을 고정한 대상이 나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나는 내 할 일 때문에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모름지기 여러 번 눈총을 발사했을 테지만 내가 꿈쩍하지 않자, 그는 드디어 혼잣말을 꺼내 든다. “수염만 아니면 10년은 젊어 보이겠구먼, 쯧쯧!” 침묵이 잠시 흐른다. 내가 가방에서 충전기를 꺼내 스마트폰에 연결하는 모습을 보더니 말한다. “마나님하고 함께 다니면 이것저것 챙겨줬을 텐데, 혼자니 얼마나 불쌍해, 그래···.” (ㅍㅎㅎ!)


속웃음 크게 웃다가 문득 그 남자 사람 얼굴에 눈길 보낸다. 80대 초중반으로 보인다. 얼굴에 술기운이 자란자란하다. 물론 술기운 탓이기도 하려니와 뭔가 다른 며리를 품지 않았을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실은 그 자신이 혼자 앉아 있으니 말이다. 의식이 남한테 좋은 말 해주고 싶었다고 자부하는 사이 무의식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진실에 차마 도달하지 못했으리라. 나도 그 물창 지나는 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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