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한동안 남은 한 짝만 끼고 다녔다. 추운 날이면 그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맨손은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뭐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으나 맨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지 못할 사정이 생길 때는 새 장갑 사야겠구나한다. 며칠 뒤, 잃어버려도 아쉬워하지 않을 만큼 값싼 것으로 재래시장 양말 가게에서 샀다. 잃어버린 장갑보다 싸면서도 더 따뜻해 잘 끼고 다니던 어느 날, 오래전에 잃어버리고 남은 한 짝만 보관된 장갑을 홀연히 찾아낸다. 더욱이나 이번에 잃어버린 짝과 같은 쪽이다. 아니, 심지어 같은 회사 제품이기까지 하다!

 

장갑 한 켤레 새로 산 것보다 쩍말없이 하무뭇하다. 더 추울 땐 값싸지만 더 따뜻한 장갑으로, 덜 추울 땐 비싸서 더 맵시 나는 장갑으로 손을 감싸니 창졸간에 장갑 부자가 된 느낌이다. 물론 이럴 경우를 예상하고 보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무리 하잘것없어 보이는 물건이라도 잘 버리지 않는 습관이 빚은 매우 예외적인 사건이다. 사실 이런 내 습관을 옆지기는 실뚱머룩해 한다. 필경 궁상맞아 보이기 때문일 테다. 지나치면 병이지만, 내 경우는 미미한 일에 고마워하는 마음과 섬섬한 것을 건사해두는 마음이 서로 맞물린다. 미미섬섬 장엄이랄까.

 

거대광활에서 장엄을 느끼는 일은 쉽다. 쉬운 만큼 헤실바실한다. 거대광활은 실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미섬섬에서 장엄을 느끼는 일은 어렵다. 어려운 만큼 사람을 올차게 흔들어 돋되게 한다. 미미섬섬 사이 팡이실이, 그 엄밀한 상호 관통만이 실재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구생태계에서 태양계에 이르기까지, 은하에서 우주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하는 진리다. 제짝이라고도 짝짝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장갑 한 켤레 놓고 까짜올리는 말이 아니다. 오달진 깨침으로 나는 한껏 해낙낙하다. 미미섬섬 무지렁이로 살아서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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