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국 전 수상 아베가 일으킨 제2차 조선 침공을 조국 가족 살해로 물타기 하려던 조선일보 음모에 앞잡이 노릇한 윤석열이가 검란을 일으켰을 때 그에 부역한 괴이한무리가 있었다. 이른바 진보 지식인 집단이었다. 기억에 남는 많은 자들이 있으나 단연 나를 경악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은 홍세화였다. 그는 조국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명토 박는 근거로 검찰 공소장을 제시했다. 공소 사실이 정확한지도 모르고, 판결이 확정되지도 않았고, 그 판결이 과연 정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일 때 그렇게 말하는 그 진보 아이콘을 보고 나는 통렬한 충격에 빠졌다. 그 충격은 홍세화가 지닌 피상성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조국이나 문재인을 내려다보며 언제 어디서나 옳기만 한 소리로 꾸짖어대는 맑은 자들에게서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 나는 그 무리를 고결 근본주의 집단이라 부른다.

 

고결 근본주의는 무흠(無欠) ‘추구전제로 치환한 주술이다. 요즘 유행하는 밈으로 표현하면 독생녀(獨生女)”. 그런 도착은 자기 허물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투사 병리다. 이 나라 유구한 토착 왜양구(倭洋寇) 매국노가 반공 애국을 전유하는 수작과 같다. 고결 근본주의자들 자신이 투사 병리에 결박됐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사악하고 그렇지 않다면 한심하다. 사악하거나 한심한 이 사태는 대개 구미 유학파나 그에 준하는 저들이 서 있는 지식 기반에서 발원한다. 그 지식 기반은 자본주의 범주로 세계를 읽고 비판하는 사상 자장을 본진으로 삼는다.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실에서 나오는 사유와 언어를 찾을 수 없는 소이다. 제국주의를 범주 삼아야만 보이는 주름 깊은 역동 서사 대신 납작한 결벽 논증으로 두 손을 빡빡 문지른다.

 

저들이 제국주의 범주로 들어서지 못하는 까닭은 저들이 배운 학문이 제국 학문이기 때문이다. 제국이 어떻게 자기 어둠인 제국주의를 들여다볼 수 있겠나. 제국을 치지 못하고 자본을 친 마르크스도 결국은 제국 지식인이다. 이 진실에 눈감은 이 나라 지식인도 당연히 부역 지식인이다. 눈감아주고 받은 그 계급장이 중해서 이 나라 진보 지식인은 제국주의 범주로 나아가지 못한다. 또 다른 진보 지식 아이콘인 백낙청이 분단 체제 넘어 제국주의 비판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와 맥락이 같다. 자기모순을 조국이나 문재인에게 투사하고 빌라도 손 씻기나 하는 진보 지식인보다 차라리 쌩 꼴통인 토착 왜양구(倭洋寇) 매국노가 덜 야비하다. 그들은 성조기, 일장기 들고 아스팔트 위에 선다.


 

야비한 윤똑똑이들이 고결한 말씀을 자판에 두들겨 넣는 동안 나는 그저 광장으로 간다. 한의원 문을 일찍 닫고 서둘러 왔는데도 광장은 이미 뜨겁다. 비록 가득 차지는 않았지만 늘 탱탱하고 맑은 광장 시민 함성이 빈자리를 그득 메운다. 초가을 여물리는 9월 오후 햇살처럼 이 함성이 자주민주주의 키우는 영양소로 작용하리라 믿는다. 오늘은 서영교 민주당 국회의원이 응원차 왔다. 알아보고 환호하는 시민들이 그가 어떤 흠을 지녔는지 모를 리 없다. 현실 정치는 이렇게 흘러가며 전선 실재를 만들어간다. 고결 근본주의 지식인에게는 전선이 실재하지 않는다. 저들이 전선이라 굳게 믿는 시공에는 같은 부류 종자만 모여 있다. 광장을 떠나며 저들도 모순에 발 담그기를 간절히 축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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