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2022년 2월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 러시아는 연간 2,00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유럽에 수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중 절반에 상당하는 1,100억 입방미터 분량이 발트해 해저를 통과해서 독일로 가는 두 개의 가스관 노르트스트림 1과 2를 통해 수송되었다. 하지만 2022년 9월 노르트스트림이 누군가의 사보타지로 해저에서 폭발됨에 따라 러시아와 유럽 사이의 가스 수송은 불가능해진다. 미국의 탐사기자 시모어 허시에 따르면 그 폭파를 지시한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었다.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두 개가 모두 파괴된 결과 유럽은 에너지 위기를 맞게 된다. 러시아의 값싼 가스를 공급받지 못하게 된 탓에 몇 배나 비싼 LNG를 미국에서 수입해야 하게 된 것이다. 유럽이 최근 급격하게 탈산업화 위기에 빠진 것은 러시아산 가스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산업용 에너지의 비용이 급증한 결과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유럽의 기관차로 불리던 독일로 알려진다.

러시아도 노르트스트림의 파괴로 가스를 수출할 수 없게 되어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의 사정은 유럽과는 크게 달라졌다. 유럽은 러시아 가스를 수입할 수 없게 되어 큰 타격을 입었으나 러시아는 큰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이다. 러시아가 가스 수출 위기를 극복한 것은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 가스의 새로운 소비자로 부상한 덕분이 크다. 노르트스트림이 파괴된 다음 해인 2023년에는 인도가, 2024년에는 중국이 러시아 가스의 최대 수입국으로 부상한다.

지난 8월 31일〜9월 1일 중국의 텐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 기간에 중국과 러시아, 몽골 사이에 별도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의 목적은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에 조인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시베리아의 힘 2’는 이미 건설되어 사용되고 있는 ‘시베리아의 힘 1’ 가스관에 더해 러시아산 가스를 중국에 공급할 목적으로 2,600킬로미터에 걸쳐 건설될 예정이다. 이 가스관이 완공되면 연간 500억 입방미터의 가스가 유럽을 거치지 않고 북극에서 몽골을 거쳐 바로 중국으로 보내질 수 있다.

텔레그램 채널 뉴 룰스(New Rules)에 따르면, 중국은 2030년대가 되면 ‘시베리아의 힘 2’를 통해 러시아로부터 연간 1,00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그 정도면 과거 유럽이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던 가스양의 절반이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 카타르,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LNG를 구입해왔는데 이제 훨씬 더 싼 가격의 가스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이득을 보는 것은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유럽과는 달리 러시아에 매우 안정적인 구매자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게 될 연간 1,000억 입방미터의 가스는 과거 러시아가 유럽에 팔아온 2,000억 입방미터의 절반에 해당한다. 러시아로서는 가스를 더 사 갈 소비처가 필요한데, 러시아는 이란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2023년에 러시아와 이란은 이란을 통해 약 1,100억 입방미터의 러시아산 가스를 수송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것은 러시아가 노르트스트림 1과 2를 통해 유럽에 보내던 가스 총량과 같은 수준이다. 이란은 러시아의 가스를 이웃 국가들과 세계 시장으로 수송하는 지역 허브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나라의 협정은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그것은 이란을 유라시아 에너지 회랑으로 자리매김하는 셈이다. 러시아로서는 유럽을 넘어 새로운 가스 유통 채널을 확보하게 된다. 아시아와 중동의 가스 시장이 가격이 일정하지 않은 현물 LNG에 크게 의존하는 것과는 달리, 러시아-이란 가스관 허브는 더 저렴하고 장기적인 공급을 가능하게 하고, 변동성이 큰 화물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나아가서 이란은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 회사 가즈프롬으로부터 매장량이 막대한 대부분 미개발된 자국의 매장 가스 개발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받기로 하고 가즈프롬과 400억 달러 규모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세계 2위의 매장량을 보유한 이란과 러시아의 에너지 축이 가동되면 LNG 시장 전체가 뒤흔들릴 수 있다.

전체 상황을 요약하면, 1) 중국은 연간 1,000억 입방미터의 가스 확보, 2) 이란은 연간 1,100억 입방미터 가스의 수송 계약 체결, 3) 러시아는 그동안 자국 가스를 판매해온 유럽 시장 전체를 대체하는 연간 약 2,100억 입방미터의 가스 시장을 확보하는 셈이 된다.

이런 점을 놓고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세계 에너지 시장도 거대한 변동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패배자는 유럽이다. 유럽은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해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을 거부한 바람에 엄청난 손실을 봤다. 노르트스트림은 안정적 에너지 확보를 위한 최대의 젖줄이었는데도 시모어 허시의 보도대로 미국이 그것을 폭파한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던 것이 유럽, 특히 독일이다. 지금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 대신 미국산 LNG를 구매해야 하게 됨에 따라 미국에서보다 4배나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동안 유럽, 특히 독일의 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러시아로부터 값싼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러시아의 가스는 유럽 대산 중국으로, 그리고 이란을 통해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유럽은 이미 불황에 빠진 상태다. 영국과 프랑스는 재정 위기에 빠져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독일은 더 심각하다. 벌써 연 3년 마이너스 성장을 겪는 중이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과거 헤겔은 그런 점을 놓고 동양은 역사가 끝나고 서양은 역사가 성숙한 것으로 말했었다. 해는 지면 다시 뜨는 법이다. 서쪽에 머물던 해가 지고 동쪽에서 이제 다시 뜨고 있다. 동세서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난 8월 31일〜9월 1일 텐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이 그런 점을 웅변적으로 보여줬다. 시사적인 것은 두 행사에 참석한 서방의 주요 국가 지도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중대 행사에 서방 지도자가 모두 결석했다는 것의 의미는 너무 분명하다. 이제 서방은 더 이상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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