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 동안 숲과 물에 빙의되어 생사 고비까지 넘겨 가며 드나들었다. 그게 몸을 배려하지 않은 고행 수준이었는지 후유증이 제법 오래간다. 천추 통증은 뭉근하기와 날카롭기를 갈마들고, 왼쪽 발바닥과 오른쪽 옆구리 불편한 느낌도 수시로 출몰한다. 사실 이런 증상은 애당초 예상된 것이었다. 10대 초반에 다친 어깨 탓으로 몸 전체 균형이 깨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50년 이상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살아온 습관이 무심코 무리하도록 이끈 듯하다.

 

최근에는 일요일 걷기를 대폭 줄이고 가능한 한 가파른 산을 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천추 통증은 현저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뒤틀린 천장관절 구조가 일으키는 문제로 판단되지만, 특별히 할 일은 없다. 간단 요가로 꾸준히 풀어주면서 관찰하는 중이다. 이러는 사이 일요일 걷기는 전처럼 멀리까지 나가지 않는 범위로 좁혀졌다. 궁 능과 국··, 그리고 국··박으로 이어지는 행로였다. 그중에서도 종묘와 국··, 특히 종묘 걷기가 가장 많았다. 무슨 연유에설까?

 

처음에는 문화유산으로서 또 예술로서 지닌 장엄함에 이끌렸다. 여느 궁 능과 사뭇 다르게 지닌 그 빛깔에 사로잡혀 가고 또 갔다. 다음에는 숲에 눈길을 깊이 두었다. 비록 작은 숲이지만 내 눈에는 정전만큼이나 장엄했다. 그러다가 지난 일요일(2025817) 여기가 자연과 문명이 만나는 가장 날카롭고도 부드러운 마주 가장자리라는 사실을 드디어 알아차렸다. 종묘야말로 문명이 극한 겸허로 자연에 깃들고 자연이 극한 관대로 문명을 품은 공존 상생의 지성소다.

 

정전과 영녕전은 건물 자체로 이미 문명 초극을 향해 있다. 맛있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미각을 감화하는 음식과 같다. 현액도 없고 단청-구태여 찾는다면 풀빛 하나-도 없다. 이는 필경 인간 저 너머 계신 신들을 향한 지극한 헌정이리라. 숲은 높은 듯 나부시 그리고 다정히 신들의 거처를 감싸안는다. 그런 숲에 화답하여 정전과 영녕전 처마 끝은 하늘 향해 솟아 있지 않다. 이 각성은 걷기 몸 감각에서 나왔을 테다. 살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로 말이다.

 




땀에 흠씬 절은 채로 천천히 찬찬히 걷고 또 멈추고 또 걷는다다른 눈으로 문명과 숲을 다시 본다그 둘이 닿고 겹치고 사이 내는 모습을 곱고 촘촘하게 관찰한다경이로운 자태를 드러내는 버섯을 틈틈이 기린다우람한 나무들에 예를 갖춘다볼 때마다 처음처럼 새로운 정전 장엄을 온몸에 담고 마침내 숭고한 사건 하나 되어 문을 나선다그래오늘 여기가 내 의학이며 철학이며 사상이며 전선이다네이팜탄 터진 듯한 팔월 뙤약볕 벌판을 뚫고 사바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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