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행동에서 후원하는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 약속 시민대회 가려고 광화문으로 스무 번째 향한다. 날씨 탓인지, 승리 집회 뒤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다. 오락가락하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바람도 간간이 분다. 416 유가족이 나와 발언할 때 가슴에 출렁이던 눈물이 울컥 쏟아진다. 음악인 누군가가 노래를 시작할 무렵 나는 천천히 걸어 인사동으로 나온다. 한 달여 전쯤 광화문 집회·행진에서 만난 부부와 저녁 약속 시간이 다가와서다.

 

박근혜 탄핵부터만 치더라도 마흔다섯 번 나온 광화문에서 생면부지 사람을 만나 약속 잡고 식사하기는 처음이다. 그 부부는 적극 참여를 꾸준히 해왔다. 부부 정치의식이 일치하는 일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자기주장 담은 글을 써서 소품까지 만들어 함께 오니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다니 연배도 그리 낮지 않은데 말이다. 정치 이야기와 일상 이야기가 자연스레 녹아든 대화를 이어가다가 늦은 시각에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곰곰 생각해 본다. 이들과 우연히 만나 인연으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능동성은 대부분 내게서 나왔다. 사실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인연은 내가 만들어서 맺어지지 않고 받아들여서 그리됐다. 그러다가 조금 느지막이 정치의식에 눈뜨고 한참 늦깎이로 의자(醫者)가 되면서 인연을 만들어내는 습관이 형성된 듯하다. 그 의식과 직업이 능동 자발을 요구하니 말이다. 416이 이 변화를 가속한 특이점이다.

 

416은 내 정치의식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주었다. 광화문 분향소는 정기 순례지가 되었다. 매일 눈물로 아이들을 하나하나 부르며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은 250명 얼굴을 모두 기억한다. 416연대 회원이 되어 여태까지 회비를 내고 있다. 416 관련 소식을 접하면 남김없이 퍼 나른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416행사는 참여한다. 유가족 포함 관련 인물들과 개별 인연은 일부러 맺지 않는다. 얼굴 없이 맺는 인연으로 내 영성을 그들과 함께 나눌 따름이다.

 

벌써 열 하고도 한해가 흘렀다. 진실을 은폐한 숭미 모일 매국 세력은 내란까지 일으키며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수괴는 탈옥해서 비공개 재판받으며, 다 이기고 돌아왔다, 5년 뒤 다시 대통령 출마한다, 떠벌린다. 헌재가 8:0으로 파면했음에도 표정이 달라지지 않는 사이코패스를 날마다 보고 살아야 하는 오늘, 지난 11년은 너무도 모질고 야속한 시간이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찌 이런 삶을 다시 살아야 한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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