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주간 그렇듯 오늘 아침에도 미리 세운 계획은 없다. 지하철 속에서마저 생각이 구름처럼 떠간다. 그러다가 산보다는 물을 보러 가야겠다 싶어 마침 타고 있는 4호선에서 우이신설선으로 갈아타고 북한산 소귀천 계곡 백운천을 일단 걷기로 한다.

 

북한산 소귀천 계곡은 북한산 계곡 걷기 과정에서 그 일부를 걸은 적이 있다. 오늘은 나머지 부분을 물에 주의하면서 걷는다. 물길을 따라가며 흐르는 모양과 소리를 곱고 촘촘하게 담는다. 쌓인 눈을 요리조리 피하고 덮인 얼음 아래를 엎드려 기며 작은 시내는 졸졸 흘러간다. 낙차 이루는 돌 사이에서는 초르르 소리내고 떨어져 물끼리 닿아서는 똘랑똘랑 소리낸다. 이 모든 소리가 인간에게 이완과 평화를 선물한다. 늘 같은 소리 같지만 지루하거나 지겹지 않으니 언제나 다른 소리임이 틀림없다. 그 소리에선 말간 내음도 피어오른다.

 

소귀천 계곡 타고 내려오는 백운천과 다른 한 갈래는 백운대가 아니라 만경대 산마루 밑에서 발원하니까 백운천이란 이름은 이래저래 이상하다. 소귀천도 마찬가지다. 소귀내 또는 쇠귀내라 하거나 우이천이라 하면 될 텐데 뭔가 뒤죽박죽이 된 느낌이다.

 

여기가 아니라 우이령에서 발원한 다른 줄기가 본류라고 생각해 우이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더라도 백운천이라는 이름은 맞지 않다. 차라리 만경천이라 해야 한다. 우이령 쪽을 왜 본류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체 산세나 맥락을 보면 우이천은 쇠귀천 계곡을 포함한 쪽을 본류로 삼아 쇠귀내 또는 소귀내로 부르는 민중 전승을 따라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찮은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런 혼잡부터 바로잡아야 제국주의 그늘을 걷어내고 자주민주 사회로 나아가는 바탕이 굳어진다. “쇠귀내물이 오늘 전한 말은 이로써 충분하다.

 

두 물길이 만나 중랑천에 닿기까지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흐른다. 생태하천으로 조성되기 전 우이천은 다른 내와 마찬가지로 생활하수가 모여 흐르는 오염된 지상 하수였다. 지금은 물도 비교적 맑고 산책로도 편리하나 둔치가 좁아 풍경은 소박하다.

 

우이천은 재미난 서사 하나를 품고 있다: 아기공룡 둘리. 빙하 타고 내려온 둘리가 발견된 곳이 한일병원 근처 우이천이라는 이야기다. 물 흐름에 비추어 터무니없는 상상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엿새 만에 천지를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터무니 있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화 서사가 기억을 타고 전승돼 이곳에 살아 있는 문화로 엄존하는 현상은 그 자체로 가치와 미학을 지니기에 충분하다. 이런 서사를 품어 들이는 범주 인류학으로 보편과 특수를 가로질러 우리 일상이 풍요로워진다면 하늘에서 떨어진 빙하인들 어떤가.

 

우리가 식민지를 겹으로 거치며 살지 않았다면 물과 얽힌 서사가 더 유구하고 풍요로웠을 텐데 참으로 원통한 일이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아픈 물 체취와 신음이 감지된다. 내 몸도 따라 천추 통증을 전한다. 더는 걷지 못한다. 예를 표하고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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