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광화문 가기는 박근혜 때처럼 어느덧 내 루틴-내게 익숙한 표현으로는 리추얼-로 자리 잡았다. 한의원 진료 끝내고 지하철로 이동하면 공식 집회가 제법 진행되었을 무렵에 도착한다. 폭력성에 찌든 탄핵 반대 집회장을 지나 흥겨움으로 넘실대는 파면 촉구 집회장 가까이 다가가자 대기 온도부터 달라진다. 부는 바람결도 그렇다. 자동으로 발걸음에 운율이 실린다.

 

저마다 다른 사연 전하는 목소리, 어깨춤을 부르는 노래, 민주주의를 치유하는 구호, 가슴과 가슴을 가로지르는 함성이 어우러질 때 모두는 자연스럽게 웃고 손뼉 치며 발장단을 맞춘다. 다르고도 같은 맥락이 되풀이해 순환하면서 천천히 흘러간다. 어느 순간 갑자기 기이한 조바심이 비수처럼 옆구리를 파고든다. 화들짝 놀라 이 감정 녀석 멱살을 움켜쥔다: 너는 누구냐?


답 듣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내가 반복을 통해 흥이 나선으로 상승하는 놀이에 아직도 익숙하지 않구나! 개인 삶은 물론 정치 저항을 싸움으로 인식하며 살아온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다. 내가 오랫동안 시달렸던 우울증도 그 탓이 크다. 우리 세대가 그려냈던 공통된 풍경이기도 하다. 알아차려 주자 조바심이 빙그레 웃으며 떠난다.

 

나는 이내 분위기 한복판으로 되돌아간다. 천천히 행진을 따라간다. 분위기는 달아오르다가 가라앉기를 거듭하는 듯하더니만 어느 시점부터 변함없는 탱탱함으로 고공비행한다. 행진이 절정에서 끝난다고 해야 할지 끝에서 절정을 맞는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채로 흥은 홀가분하게 흩어진다. 신명과 일상이 절묘하게 융해되어 명동 일대를 평정한다. 밥 먹으러 간다.

 

식당 옆자리서 장년 여성 넷이 술을 마신다. 대화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는 듯한 사람이 뚜벅 이렇게 말한다: 저런 삶들도 필요하지. 그래봐야 소수지만. 다른 사람 아무도 이 말에 반응하지 않아 뒷이야기는 없다. 나는 홀로 묻는다: 다수는 누굴까? 답 듣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경꾼이지. 얼마든지 구경해도 된다. 구경만으로 누리는 변화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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