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성원(문화학자)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사람이 참으로 간사하다. 매일매일 속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뉴스를 챙겨보았다. 온갖 사람들의 온갖 발언에 신경을 끓이고 때로 긁히는 마음이 들 만큼 예민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토리 아빠가 떠난 뒤 문득 허망한 마음이다.
언젠가 나는 헬레니즘 시대의 예술을 아테네 민주주의 시대의 예술과 비교하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헬레니즘 시대의 예술은 <라오콘상>이나 <사모트라키의 승리의 날개> 같은 작품들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장엄하고 화려하며 역동적인 기교와 자태를 뽐낸다. 이 시대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중 하나는 과거 그리스 시대 건축물을 상징하는 양식이 도리스, 이오니아식 원주의 소박하고 강건한 느낌과 달리 화려한 잎으로 테두리를 두른 코린트 양식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처럼 화려하고 역동적인 작품들을 보면서도 어쩐지 서글픈 마음이 든다.만개한 꽃이 마침내 시들어버리듯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의 이면에서 그 시대의 우울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들이 이처럼 화려해진 까닭은 한 마디로 예술가의 후원자(물주)들의 경제력에 있었다. 헬레니즘 시대 확장된 그리스-마케도니아 제국의 지배계층은 이전 시대 폴리스의 물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유해졌다. 기본적으로 헬레니즘 시대의 예술 작품들은 부유한 개인 후원자의 현시욕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제작된 훌륭한 문화상품이었다. 설령, 이 작품들이 공공적인 목적으로 발주되었고, 공공장소에 전시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드러내주는 것은 과거 상고기 그리스 폴리스의 공공성과는 거리가 멀었다.당시의 공공 건축물이나 이를 장식한 조각이 해당 도시국가와 공동체 주민들의 위엄과 권위를 드러냈다면, 헬레니즘 시대는 표면적으로 그리스 문화에서 기원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내용적으로는 알렉산드로스의 사후, 제국을 분할 지배한 제왕들의 전제 왕정이었음을 숨기지 못했다. 도시국가의 공공성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알렉산드로스 이후 남겨진 전제군주의 권세와 그 주변의 관료와 상인 등 지배세력의 공공성만 남아있었다.헬레니즘 시대의 예술작품들이 이처럼 극도의 화려함과 장식성을 추구한 이면에서 지식인들의 철학은 현실참여 대신 현실도피를 추구했다. 기원전 300년경에 등장한 에피쿠로스 철학과 스토아 철학은 쾌락과 금욕이라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두 철학은 사회의 복리가 아닌 개인의 선(행복)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이었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는 서로 다른 출발점을 가졌지만 궁극적으로는 마음의 평정보다 나은 다른 것을 이 세상에서 기대할 수 없다는 회의주의적인 결론에 도달한다.고전기 그리스 문화의 모태가 된 폴리스(도시국가)들은 사실상 거의 모든 사람이 서로 알고 지내는 사회였다. 혈연, 경제적 이해관계를 비롯해 수많은 사회적·정치적 유대를 통해 시민이 결속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그리스 본토의 충만했던 사회적·가족적 유대관계는 개인에게 여러 정치적 의무와 가족과 공동체 관계 속에서 제약을 부과했지만, 반대로 이들 상호간의 이해와 신뢰는 고대의 다른 어떤 문화가 성취했던 것보다 큰 정치적 권리(참정권)를 시민들에게 주었다.그러나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러 거대한 세계주의(전제정치의 지배 아래 있는 세계 제국) 아래에서 한 인간과 시민으로서의 삶을 규정짓던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정치(공동체 참여)와의 긴밀한 연계는 지방적 차원에서조차도 사라져버렸다. 헬레니즘 왕국의 평균적 그리스인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직계가족밖에는 없었다. 그와 같은 시대였기에 문학에서 이른바 현실도피적인 '전원시' 장르가 출현한 것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자연인> 같은 프로그램이나 귀향 귀촌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이런 현상도 민주주의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당신은 더 이상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정치적 낙담이 하나는 퇴폐와 유미주의로, 다른 하나는 은둔으로 귀결되는 것이다.그 결과 그리스적 삶의 전통적 가치관과 헬레니즘 시대의 사회적·정치적 현실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괴리가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헬레니즘 제국은 시민(市民)에서 신민(臣民)으로 정치적 위상이 변화한 이들에게 사회적 양극화와 정치적 무기력을 강요했다. 헬레니즘 제국의 세계주의에서 나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세계화'를, 그리스 본토의 좁은 경제권을 넘어 헬레니즘 체제에서 유한계급이 얻었던 경제적 권력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적 양극화를 발견한다. 모던(modern)한 고대(古代)의 풍경에서 현대(現代)의 고대(古代)적 풍경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한 마디로 말해 아테네 민주정이란 정치적으로 각성된, '제멋대로 시민'들의 발언과 정치적 참여가 실제로 아테네의 현실 정치에 반영되는 정치적 효용감을 느낄 수 있었던 시대였다면, 헬레니즘 시대는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더 광대한 '제국의 세련된 신민'이 되었지만, 그들의 정치적 선택이 제국의 통치에 반영될 기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시장에서 돈을 세거나 더 즐거운 자극을 찾아 헤매는 일뿐이었다.광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서로 다른 현장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벌써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란 우두머리가 버티다 체포된 지 이제 불과 하루밖에 안 되었지만, 벌써 내 안의 긴장이 이렇게 사라져버렸다. 어떤 이는 십년 넘은 쳇기가 사라졌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선 그 심정이 곧 나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헌재의 시간'이라느니, '공수처와 검찰의 시간'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결국 지금까지도 존재해왔던 기득권 '체제의 시간'이기도 하다.열린 광장과 촛불의 결과였던 문재인 정부가 검찰 개혁을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검찰 공화국의 출현을 막지 못했던 것, 수구보수세력의 향수와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했음에도 수구보수세력이 이후 ‘히드라’처럼 더욱 집요한 형상으로 되돌아온 것처럼 이제부터가 진짜 어떤 미래로 갈 것인가? 어떤 대한민국을 요구할 것인가? 저들보다 더욱 집요하게, 더욱 혼란스럽게, 더욱 시끄럽게 말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