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나는 나지막한 산길을 걸어 출근한다. 남쪽에서 비탈길을 올라 능선길 따라가다가 북쪽 비탈길에 이르면 아연 풍경이 달라진다. 눈이 여전히 남아 있다. 심할 때는 아예 발길을 들여놓지 못하고 돌아가기도 한다. 거기만 걷기 위해 스노우 부츠를 신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오늘은 길섶에만 눈이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아예 눈을 떼고 걷기는 뭣하다. 밤기운이 여전해 어둑어둑할 때는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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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아직 동은 트지 않았다. 긴급뉴스 보는 일을 축으로 해서 돌아가던 긴장된 일상이 어느 정도 풀어지기는 했으나 아직도 공화국 계절은 겨울이고 민주주의 하루는 밤이다. 가만히 앉아서 봄을 기다릴 수만은 없는 우리 공화국 처지다. 이불 속에 누워서 아침을 기다릴 수만은 없는 우리 민주주의 형편이다. 어쩌겠는가. 우리 손으로 세워야 할 공화국이고 우리 손으로 닦아야 할 민주주의다.
남들은 모른다. 우리가 중첩 또는 누적 식민지라는 악무한(惡無限)과 분단이라는 악조건이 빚어내는 왜곡과 굴절로 말미암아 이렇게 몸부림친다는 사실을. 사회 모든 분야 꼭대기에 철옹성 쌓고 앉은 특권층 매판 부역 세력이 시도 때도 없이 나라를 말아 처먹는다는 사실을. 저들이 쳐놓은 가짜 반공과 사이비 자유민주주의에 휘말려 막무가내 날뛰는 광신도가 총궐기하면 능히 독자로 정권도 창출한다는 사실을.
말이 쉬워 평평하게 K-민주주의, K-공화국이라 일컬으나 인민이 주체이므로 민주주의일 뿐이고, 인민에게서 주권이 나오는 나라니까 공화국일 따름이다. 우리는 실제로 자주(自主)와 통일이라는 불퇴전 목표를 놓고 반제국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반제국주의 전쟁이라서 자맥질이 극심하다. 악랄한 제국과 노회한 부역 지배층이 구사하는 전략·전술에 맞서 맨주먹으로 싸워온 인민이 치른 희생은 형언 불가다.
희생은 패배로 끝나지 않는다. 어제 희생한 죽음들이 봄을 데려오고 오늘 희생하는 삶들이 동을 틔움으로써 패자 필생 승자 필멸 진실을 세워간다. 패륜·비리 검사 한 놈이 사이비 언론 사기술 탓에 대통령 돼서 2년 10개월 동안 승승장구했던 부역 전쟁은 우주 전사 키세스 소녀들이 지새운 겨울밤 희생 덕에 끝판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눈이 다 녹을 때까지, 붉은 해가 떠오를 때까지 소녀는 응원봉을 놓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