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육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불가피한 경우라도 아주 조금만 먹는다. 처음부터 무슨 목적이나 지향을 지니고 그리 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태생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99.9%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 먹는 음식은 동물성 식품인 모유 아니면 우유지만 나는 미음이었다. 어머니에게서는 젖이 나오지 않았으며, 1950년대 중반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는 우유를 구할 수가 없었다. 미음 머금은 솜을 입술에 대고 짜 먹여 연명시켰다 한다. 이 곤경이 미각을 확정했다.

 

붉은빛 음식이 식욕을 더 자극한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풀빛 음식을 보면 눈이 반짝인다. 냄새도 마찬가지다. 신선할 때는 물론 데칠 때 나는 나물 냄새, 뜸 들 때 나는 밥 냄새, 심지어 내가 먹지도 못하는 소여물 끓이는 냄새까지 좋아한다. 조사에 따르면 인류 공통으로 가장 이끌리는 냄새가 바닐라 냄새라고 한다. 이름이 그래서 상상하기 어려우나 그 냄새가 근원에서 쌀, 그리고 벼 냄새라는 사실을 나는 대뜸 알아차렸다. 북미 대륙 토착민이 향모라고 부르는 볏과 식물 기원 아로마를 바닐라그라스라고 부르는 까닭도 거기 있을 테지만, 모두 바이 모른다.

 

지난 몇 년 동안 식물에 빙의되어 공부하면서 식물-지의류, 균류, 조류 포함-에 관한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무엇보다 내가 살기 위해 먹는, 그러니까 죽이는 식물을 대하는 자세가 영 달라졌다. 식물 공부 끄트머리에 더 큰 회심이 일어나 제국주의 공부 길로 들어섰는데 이때 식물과 식사에 관한 생각이 한 번 더 바뀌었다. 무엇보다 식물 생태 본성인 평등 분산 팡이실이, 그 네트워킹을 내 생명에 받아들인다는 각성이 눈부신 변화였다. 식물이 지니는 영양소를 분석해 그래서 몸에 좋다는 따위 서구 기계론과 환원주의 관념을 벗어던진 나지막한 혁명이었다.

 

이 혁명 연장선에서 일어난 변화는 식물을 먹는 일이 제국주의에 맞서는 일이라는 정치적 각성이었다. 제국주의 본성이 바로 평등 분산 팡이실이, 저 공생 생태계를 멸절하는 전쟁이고, 그 대표 병기가 바로 육식이다. 육식은 동물 생태 본성인 불평등 집중 기관 구조, 저 기생 생태계를 내 생명에 구현하는 일이다. 육식 중독 인간이 제국 신민 되는 일은 필연이다. 이 저주는 군대를 동원한 거대 전쟁으로 풀 수 없다. 가장 사소한 일상, 그러니까 식탁에서부터 제국 생활 양식을 걷어내면서 식물만큼은 아니지만 인간이 지닌 팡이실이 본성을 찾아가야 가능하다.

 

인간에게 과연 팡이실이 본성이 있는가? 있다.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진화사에 기댄다: 거대 파충류에게 패배한 포유류는 숲으로 쫓겨났다. , 그러니까 식물에서 포유류는 팡이실이 본성을 배웠다. 포유류 팡이실이 본성은 승자 파충류에 없는 공동체 형성으로 나타났다. 서로에게 닿고 이어짐으로써 위험을 극복하고 안전하게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이 적응을 통해 패자 필생 승자 필멸이란 진리를 세웠다. 포유류에서 영장류로, 영장류에서 다시 인간으로 진화하는 동안 통제가 불가능해 보이는 변이가 일어났지만, 인간에게는 여전히 공동체 본성이 남아 있다.

 

공동체 본성은 장 신경-무수 미주신경(미주신경은 부교감신경을 이루는 주축이다)-교감신경-유수 미주신경으로 이어지는 자율신경 진화 과정에서 획득했다. 유수 미주신경은 타자와 얼굴을 마주해 서로 이어지며 놀며 나아가 더불어 안전한 생명 활동을 영위하게 하도록 진화한, 고대 미주신경과는 다른 곳에서 발원하여 다른 곳에 도달하는 또 다른 미주신경이다. 스티븐 포지스가 말하는 () 미주 이론인데 바로 이 두 번째 미주신경이 공동체 본성 증거다. 아직 수정 보완 확장할 일이 남아 있는 이론이지만 근본 진실성은 분명하게 확보했다고 평가한다.

 

나는 이 이론에 두 질문을 붙여 근원 서사를 그려보고 싶다. 첫째, 장에서 인간과 공생하는 미소 생명이 이 시스템에 어떻게 관여하는가? 둘째, 숲은 이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이야기는 공동체 개념을 지구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하는 토대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 전체를 수탈·살해하는 제국주의와 맞설 수 없다. 백반집에서 먹는 6천 원짜리 식사로 반제 전투를 하려고 할 때, 쌀과 곰취와 버섯이 전우가 아니라면 나는 반제 전사가 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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