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 부조리극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의외” 출연자가 있다. 종교인이다. 개신교는 말할 나위조차 없고 불교 또한 만만치 않은 배우를 양성해 냈다. 멀리 갈 일도 아니니 윤석열이 시대만 보더라도 대단하다. 윤석열 대통령 만든 공신 가운데 개신교 이만희·전광훈이 뜨르르하고, 불교 자승이 그들에 뒤지지 않는다. 탄핵 심판이 헌재에서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이 종교에 속한 명망가들은 양비론 따위들을 들고 저 더러운 행렬에 올라탄 채 시민에게 훈계질한다.
방가(方家) 가족 신문이 16일부터 “원로” 인터뷰를 시작해 오늘까지 세 사람 말을 실었다. 첫 번째가 불교 조계종 성파, 두 번째가 개신교 김형석, 세 번째가 개신교 손봉호다. 나이나 사회적 위치로 따지면 “원로”라는 용어가 그런대로 어울리지만, 저들이 한 말로 따지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치적 문맥에서 읽힐 줄 뻔히 알면서도 도무지 정치 청맹과니처럼 말하니 말이다. 그런 말이 결국 윤석열 두둔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최 알다가도 모르겠다.
성파는 종정이다. 종정은 총본산 우두머리로서 당대 으뜸가는 선지식으로 인정받는다. 나는 그가 한 말을 듣고 도대체 뭘 깨달아서 그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을까, 정말 궁금하지, 않았다. 전두환 시대 성철이 뇌까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와 도긴개긴이었니 말이다. 경전 탐구와 참선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반야 놀음인지 다시 한번 확인했을 따름이다. 붓다 원음에서 너무도 멀리 이탈해 버린 통속 불교 반야 놀음 탓에, 절집 대웅전에는 옳아서 그른 빈말만 무성하다.
김형석은 “백년을 살아보니”로 유명한 통속 철학자로 개신교 장로다. 왜놈 제국 유학파로 저들을 숭모하는 특권층 부역자다. 문재인을 좌파로 몬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렇게 백년 넘게 살아서 딸랑 이런 인터뷰나 하고 있으니, 백년 무상이다. 손봉호는 직접 교회를 세우고 목회까지 한 개신교 장로다. 철학 교수로, 올곧은 종교인으로 사회정치적 현실에 깊숙이 몸담았었다. 30여 년 전 전교조 합법 주장이 담긴 내 글을 그가 내동댕이친 뒤부터 더는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
종교가 정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치가 어려울 때 원로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논제가 진부한 까닭은 답을 이미 알고 있는데 제대로 된 종교도 원로도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둘이 한 인격에 결합해 나타날 때 그 미혹은 사회를 더욱 어지럽게 만든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신교는 진즉 버렸고, 나이 아무리 들어도 원로 소리 들을 일 없는 나야 남을 오도할 리 없으니, 늘그막이 홀가분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찾아드는 이 회한은 또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