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에 핍박받는 민중이 일으킨 대단한 일을 보고하려 이튿날인 일요일 청와대 주산인 백악에 올랐다. 오천 년 동안 그랬듯 나라를 지키고 구한 주체는 언제나 민중이었다. 싸지른 놈들이 나라를 구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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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주산, 백악 마루
김명신과 윤석열이 주술로 말아먹은 나라를 구하려고 내가 한 일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저들이 희화한 청와대 주산 백악에 올라 저들을 축원하는 것이었다. 여덟 자 진언을 언제나 올렸다. 누가 물었을 때 천기누설이라며 입을 닫았었다. 오늘 비로소 입을 연다: 명신파멸 석열파면. 아직 헌재가 남았으나 그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민중은 다시 응원봉을 들 테다.
백악을 두루 살피며 걷는데, 곳곳에 보이는 참상은 지난 폭설 후유증이다. 꺾이고 넘어지고 방치된 나무들이 슬프고 아프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518처럼 416처럼 1029처럼 김진숙처럼 쌍용차 해고 노동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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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부러지고 뽑힌 나무들이 뒹군다.
산을 돌아 마침내 칠궁(七宮)에 닿는다. 칠궁은 시민 대부분이 모르는 곳인데 조선 임금 낳은 후궁을 모신 사당이다. 청와대 서쪽 모퉁이에 있다. 드라마 <동이> 주인공 최숙빈을 모신 육상궁이 본궁이고 나머지 여섯은 이를테면 셋방이다. 그런데 그 셋방살이 궁 현액은 다 궁인데, 정작 본궁은 묘다. 묘는 궁보다 아랫급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최숙빈은 쌍것-무수리 출신이라고 전해온다-이었으니까. 결국 이 차별과 모멸은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며, 전라도 사람, 장애인, 식물, 곰팡이, 박테리아, 바이러스, 물, 먼지로 번져간다. 천추 뼈 아프게 걸은 오늘 길은 이렇게 어제 걸은 여의도 길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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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묘
나는 걱정한다. 김명신이와 윤석열이를 골로 보내도 변치 않을 어떤 어두운 세계를, 세월호 예은이 아빠가 유예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그러나 오늘 밤만이라도 꿀잠을 자고 싶다. 어젯밤과 오늘 밤이 한 밤이었음 좋겠다. 내일은 또 내일을 부둥키련다. 변방 무지렁이 삶은 그저 반걸음 앞을 내다보고 한 걸음 내디딜 만큼일 따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