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은 잠을 쉬 이루지 못했다. 무슨 근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반주 한 잔 어정뜨게 해서 각성 효과가 일어난 모양이다. 길게 뒤척거리다가 어느 순간 극적인 서사를 지닌 꿈 세계로 들어간다. 근래 보기 드물게 아주 세밀하고 다양한 장면은 물론 등장인물 용모, 표정, 태도가 생생하게 나타난다. 인과 앞뒤를 뒤섞기도 하고 문맥을 잘라 편집하기도 하면서 대하소설처럼 박진감 넘치게 흘러간다. 또 다른 어떤 순간 나는 자각몽 상태로 접어든다. 당연히 꿈 바깥에서 꿈 서사를 보완하고 완성하는 비몽사몽(非夢似夢), 정확히는 비몽시몽(非夢是夢) 상태가 이어진다. 마침내 그 꿈에 대한 수용·감사까지 마무리된다. 사부자기 일어나 스마트폰을 여니 158분 카이로스가 오도카니 나를 기다리고 앉아 있다.

 

냉큼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온갖 노폐물을 깔끔하게 내보내고 몸을 씻는다. 내 방으로 돌아와 북쪽 향해 난 창문을 연 뒤 맑은 물 한 종지를 모시고 선다. 한밤중에 일어난 일을 사뢰고 감사를 표한다. 여덟 번 절하고 정좌한다. 가을 아침 햇살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말간 서사를 기록한다. 요즘 화두 삼은 반제국주의 전선, 범주 인류학, 고전물리학과 양자물리학이 지닌 관련성을 중심으로 명쾌한 논리가 흘러간다. 나는 한 찰나에 알아차린다: 꿈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은 뇌가 꾸며대는 허구가 아니다. 소미(小微) 생명들 팡이실이가 펼치는 각성 현실에 대한 비대칭 대칭 반-실재다. 다 기록, 아니 받아 적고 나니 3시 정각이다. 꿈을 꿈답게 꾸기 위해 전과 달리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한다.

 


모든 꿈을 예지몽이라 할 며리도 없고, 모든 꿈을 개꿈이라 멸시할 일도 아니다. 꿈은 의식이 이끄는 낮 삶의 맞은편 삶을 드러내 진실이 지니는 전체상을 구현하는 작용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반드시 꿈을 꾸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꿈을 제대로 꾸기 위해 인간은 잠을 잔다. 꿈 없는 잠은 잠이 아니다. 꿈 잠이 꿀잠이다. 꿀잠 없는 인간은 세계 절반 이상을 잃은 채 살다가 끝내 파멸한다. 그러므로 궁극에서 꿈은 해석 대상이 아니다. 기억하든 못하든, 무슨 얘긴지 알든 모르든 신뢰하고, 의탁하면 된다. 뇌가 모르는 일이 더 많은 삶을 인간은 살아가야만 한다. 그럼에도 살아지는 생명 세계의 관대함에 엎드려 절하며 살면 된다. 극진히 큰절할 때 선물로서 꿈은 꿀처럼 내 영혼을 찾아온다.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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