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우리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지도자들은 중동의 사태를 놓고 논의했다. 우리는 가자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휴전과 인질 석방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되는 노력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천명했다. 우리는 합의를 최대한 빨리 종결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 이집트의 시시 대통령, 카타르의 아미르 타밈이 이번 주말에 협상을 재개하라고 공동으로 요청한 것을 지지하며, 더 이상 잃을 시간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모든 당사자는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 덧붙여 구호품의 수송과 배포가 자유롭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란의 침략에 맞서, 그리고 이란의 후원을 받는 테러 집단의 공격에 맞서 이스라엘을 방어하겠다는 지원 의사를 밝혔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계속되는 군사적 침략 위협을 중단할 것을 이란에 요청했고, 그런 침략이 일어나면 지역 안보에 생겨날 엄중한 결과에 대해 논의했다.”
이것은 8월 12일 자로 ‘중동 사태에 관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공동성명(Joint Statement from the United States, United Kingdom, France, Germany, and Italy on the Middle East)’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다섯 나라 공동성명의 전문이다.
이런 성명이 왜 나왔는지는 분명하다. 지금 중동, 정확히 말해 서아시아에서는 핵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대규모 지역전쟁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 일촉즉발의 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이 그것이다. 그런데 성명 내용을 들여다보면 서방 ‘지도자들’은 위기의 원인을 ‘이란의 침략’과 ‘이란 후원을 받는 테러 집단의 공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왜곡된 것이다.
성명은 이스라엘을 방어와 지원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이란과 그 동맹 세력은 침략과 테러 공격의 주체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서아시아에서 지역전쟁의 위기가 생긴 것은 이스라엘 때문이지 이란과 그 동맹 때문은 아니다. 지금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다. 지난 7월 31일 이스라엘은 이란을 방문한 하마스의 정치국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국제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암살했다. 하니예가 이란의 새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의 취임식에 참석한 뒤 숙소에 머물던 사이 단거리 발사체로 살해한 것이다. 손님으로 온 외국의 고위인사가 자국 영토에서 암살당하는 것을 용납할 나라는 없다. 사건 직후 열린 유엔안보리 회의에서 이란의 주유엔대사 아미르 사에이드 이라바니는 “이란은 이번 테러 범죄 행위에 대해 국제법에 따라서 필요하고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시점에 단호하게 대응할 고유한 정당방위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성명에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이스라엘 측에 있다는 점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이스라엘의 책임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다. 반면에 피해자인 이란의 예상되는 대응에 대해서는 ‘침략’으로, 그 동맹 세력은 ‘테러 집단’으로 규정한다. 성명문에서 언급된 ‘긴장을 완화하고’ ‘휴전과 인질 석방’을 해야 하는 의무도 살펴보면 이란과 하마스에만 지워져 있다.
그러나 서아시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당장 ‘휴전’을 실시해야 할 당사자는 이스라엘이지 이란 측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세계인 다수—특히 남반구의 인민 대부분—가 가자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살육을 멈추고 휴전할 것을 외치고 있는데도 북쪽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공격하고 있고, 이란에 대해서는 오히려 전쟁을 도발하려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스라엘의 그런 태도는 특히 개인적 부패 문제로 전쟁이 종식되면 재판에 회부되어 감옥 갈 공산이 큰 총리 비비 네타냐후, 이스라엘을 시온주의 유대 국가로 재건하려는 강경 극우세력으로 현 내각에 들어와 있는 국가안보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 재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 등이 이란과의 갈등 격화를 통해 전쟁을 도발해 미국이 직접 개입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다섯 나라의 공동성명을 보면 서방의 태도, 특히 다섯 나라의 수장인 미국의 태도가 위험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지금 서아시아에서 전쟁 확전을 원하는 것은 이스라엘임을 모를 리 없으면서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고 되레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말하고, 피해국인 이란에 대해서는 불법 공격을 받은 데 대해 정당방위를 행사하려는 것도 되레 침략으로 말하고 있다.
자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귀빈으로 참석한 온 외국 지도자를 국제법을 무시하고 살해한 이스라엘을 이란이 용납할 리는 없다. 이란은 지난 4월 1일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주재 자국 영사관을 이스라엘이 공습해 혁명수비대 소속 장성 2명을 포함한 10여 명을 살해한 데 대한 보복으로 300대 이상의 드론과 미사일로 이스라엘의 군사기지를 공격해 세계 최강의 방공망임을 자랑하는 ‘강철지붕(Iron Dome)’을 무력화한 바 있다. 당시 이란의 공격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미리 통보한 뒤에 이뤄졌고 이스라엘의 방공망, 미국과 프랑스의 공중 지원, 요르단 등의 미사일 요격 등을 뚫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져 세계가 놀랐다. 이번에 예상되는 이란의 공격은 지난 4월보다 훨씬 더 강력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성명문을 보면 미국 등 서방 주요국이 커져만 가는 서아시아 전쟁 위기를 완화하려는 기색은 전혀 없다. 오히려 있지도 않은 이란의 ‘침략’을 거론하고 동맹국을 테러 집단으로 폄하해 이란을 도발하려 한다는 인상이다. 이미 미국은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에 대비해 항공모함 전단과 핵 잠수함 등을 이스라엘 근해에 추가 배치하는 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스라엘이 당장 가자에서 학살을 멈추고 휴전을 한다면 이란은 7월 31일의 불법적 암살을 불문에 부칠 수 있다는 전언이 있다. 자국 영토 내 귀빈 살해라는 이스라엘의 도발 행위를 응징하는 것을 이란이 포기하려면 이스라엘이 적어도 가자 지역에서 자행하는 살육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이 언급되는 것 자체가 이란 측의 보복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는 셈이다. 이스라엘이 먼저 휴전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지금처럼 계속 도발적 태도를 드러낸다면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은 필연적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의 개입도 필연적이라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다. 이란은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이란과 미국 사이에 군사적 갈등이 벌어지면 러시아가 개입한다는 예상도 가능하다. 러시아는 지금 이란에 상당한 군사적 원조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8월 5일 러시아 전 국방장관이자 현 국가안보회의 서기인 세르게이 쇼이구가 이란을 방문해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이란군 참모총장 등을 두루 만나고 갔다. 러시아뿐이겠는가. 이란과 미국 간의 군사적 갈등이 생기면 중국의 개입도 배제되기 어렵다. 중국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이란과도 군사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이란을 방문한 하마스 정치국 최고지도자를 이스라엘이 암살한 데 대한 응징을 이란이 할 때 만약 미국이 양국의 갈등을 완화하기보다는 부추기는 선택을 하면 서아시아에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우려가 있는 것은 그런 점들 때문이기도 하다.
국제법을 무시하고 타국과의 공존과 협력 의무를 무시하며 안하무인으로 타민족을 살육하는 이스라엘의 무모한 행위로 세계는 새로운 대규모 전쟁의 위기로 빠지고 있다. 서아시아는 지금 아마겟돈으로 변할 조짐이다. 이런 상황을 앞두고도 미국 등 서방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행동을 제지해 확전 우려를 더는 대신에 되레 이란을 탓하고 전쟁을 도발한다. 그들의 행태를 보면 지구를 파탄으로 빠뜨릴 전쟁을 일으키려 안달인 것만 같다.
이란, 러시아, 중국의 지혜로운 대응이 무엇보다 요청된다.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서아시아에서 깊어가는 지역 긴장, 전쟁 위기를 완화하는 데 이스라엘과 서방이 좋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정당하게 응징하되 더 이상의 확전은 일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이 이스라엘과 서방이 무모한 확전을 하지 못하도록 이란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