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으로 나눈 서울 한강(京江) 걷기가 오늘로써 마무리되었다. 실제로는 더 있었다: 경기도 양평 구간 다녀온 끄트머리에 걸었던(6월 16일) 옥수동·금호4가동 구간, 그리고 어제 걸은 이촌1동 구간. 굳이 하나 더 끼워 넣는다면 한강과 청계천 알레고리에 터 잡아 걸었던 두물개부터 청계천 두물다리까지 구간.
어제는 전혀 뜻하지 않았던 약속이 이 동네 한 음식점으로 잡히는 바람에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한 시간가량 걸었다. 정북방에 자리한 대통령실을 향해 축징하기 위해 불현듯 잡은 일정이었다. 미리 준비해 둔 버드나무 신목을 챙겨 가서 강가 단단한 돌 옆에 심고 허리 접어 발원하였다: 모쪼록. 부디. 제발. 꼭. 똑.
그제도 후배들과 잡은 저녁 약속으로 10km가량 걸었고, 어제도 8km가량 걸었는데, 오늘 길은 20km 넘을 듯해서 일단 각오부터 한다. 게다가 나지막하나 산도 둘을 올라야 한다. 물을 넉넉하게 챙기고 양산도 넣는다. 오전 오후 두 일정을 이어서 진행하기로 하고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염제가 훅하고 들어온다.
방화역에서 내려 우선 국립국어원부터 간다. 경강 걷기 마무리가 여기서 비롯할 줄은 몰랐다. 몰라서 필연이 아닐까. 다시 한번 식민지 어문 현실 정화와 겨레말 현창을 빌어마지않으며 꿩고개를 오른다. 넘어가면 한강 둔치로 가는 나들목이 있다고 한 지도를 믿고 거침없이 나아가다가 막힌다. 되돌아서 찾아간다.
왔던 길 되돌아가며 길 찾는 일은 이제 이골이 난 상태다. 언제 봐도 식민지 도로는 자동차 위주다. 악의 없는 불친절로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다. 이러구러 다족류 괴물 같은 방화대교 교차로 밑을 지나 강서 습지생태공원으로 들어선다. 입구부터 나름대로 손탄 흔적이 역력한 산책로가 손쉬운 걷기를 안내한다.
버드나무 중심으로 무성히 자란 푸나무가 자잘한 섬들을 경계 삼아 아옹다옹 어우러지는 습지를 구불구불 걷는다. 언제라도 볼 수 있는 작은 물줄기가 정겹지만, 단 한 번도 가닿을 수는 없게 돼 있다. 심지어 습지 관찰하도록 만든 데는 나무판자 길이 아예 공중에 떠 있다. 아쉽다. 분명 더 좋은 방법이 있을 텐데.
물 걷기를 하는 나로서는 무엇보다 물에 가 닿아야 한다. 이윽고 행주대교다.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는 삭막한 공사 차량 통행로로 들어선다. 직진하면 물이 나오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비로소 거기서 아픈 물과 만난다. 신음을 들으며 매운 체취를 맡으며 물 모심에 몰입한다. 돌아 나와서 경강 끄트머리로 간다.
명박 운하 아라뱃길까지는 가지 않으련다. 그 토건에 토역질하느니 곱게 숲길 돌아서 마곡나루로 가자. 시간을 가늠해 보니 조금 서둘러야겠다. 마곡동 구간은 곱촘히 살피지 않고 곧게 난 흙길을 따라 빠르게 걷는다. 마곡 나들목 가까이서야 길을 벗어나 물가로 간다. 삼가 물 사룀을 한다. 사뢰면 병이 나으니까.
마곡동은 삼(麻)을 많이 재배했던 골짜기란 뜻으로, 본디 고고마진 나루터가 있는 어촌 마을이었다. 큰 홍수가 난 뒤 제방을 쌓으면서 나루터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 지금은 하수처리장이 있다. 이곳 습지를 중심으로 짰던 야심 찬 오세훈표 수변 토건 계략이 무산되고 남겨진 허울뿐인 생태습지공원엔 얄팍함만 빈둥거린다.
땡볕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궁산으로 스며든다. 궁산은 나지막하나 건너편 행주산성과 더불어 한양 서쪽 하구를 지키는 군사 요충이었다. 실제 임진년 왜란 때 의병과 관군이 여기 집결했다가 행주산성 권율 장군과 합류해 대첩을 이루었다. 그 역사를 못마땅히 여긴 일제가 산 동남쪽에 군사용 땅굴을 파 앙갚음했다.
산 정상에는 성터가 있고 그 한가운데 성황사가 있다. 도당 할머니 신을 모신 사당이다. 뱃사람 물길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신앙과 결부돼 있을 듯하다. 순우리말 이름이 있을 텐데 조선시대는 사대 벼슬아치들이 한자 음차로 모욕하고, 식민지 시대 이후는 제국 잡귀가 능멸함으로써 초라한 모습으로 쪼그라들고 말았다.
나는 준비한 물로 제수 삼아 예를 갖춘다. 이른바 고등종교야말로 도리어 큰 미신이다. 저들이 사악한 정치꾼 앞뒤에서 벌여 온 주술을 역사가 기억하는 한,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남의 신 데려다 머리 조아리느라 제 신 짓밟고 버리는 식민지 살풍경과 행주대첩이 이루는 모순을 직시하며 나는 소악루로 내려온다.
겸재가 양천 현감 시절 남산 일출을 보고 반했다는 소악루에 걸터앉아 남산을 밀어낸 쓰레기 산을 탄식한다; 봉산 줄기와 삼각산을 내쫓은 거대한 토건 괴물에 경악한다; 제국 “따라 하기”에 골몰하는 부역 국가 내부 식민주의 패거리를 축징한다. 오늘 하늘은 왜 저리 이글거리도록 파란지, 구름은 숨 막히도록 하얀지.
숲을 착취 주술 도구로 삼았듯 물도 돈 쏟아내는 화수분 취급하는 특권층 부역자 권력에 대체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갈수록 미궁이다. 그리하여 걷는다; 걸음으로써 숲을, 강물을 서로 주체로 세운다; 그들이 하는 말을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먹는다; 증언한다. 나는 물 한 방울 입에 물고 불난 산으로 날아드는 벌새일 뿐.
궁산을 나와 경강 줄기 따라 직선으로 열린 가양동 구간 산책로를 따라간다. 가양역에서 경강 걷기를 마무리하면서 생각을 매만진다. 예상보다 충실히 걸었다. 걷기가 이끈 서사도 나로서는 마무리답게 풀렸다. 기획 아닌 기회가 빚은 구성이다. 음모 넘어 운명 같은 거다. 다음 주엔 운명과 대놓고 의논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