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원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카세 히데아키(加瀨英明, 1936.12.22.~2022.11.15.)는 1936년, 동경에서 외교관이었던 아버지 카세 슌이치, 일본흥업은행 전 총재를 지낸 오노 히데지로(小野英二郞)의 딸 스즈코 사이에서 출생했다. 참고로 어머니 오노 스즈코의 언니가 바로 존 레논의 두 번째 부인 오노 요코(小野洋子)였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겠지만, 존 레논은 1971년 오노 요코와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적이 있으며 카세 히데아키와도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존 레논이 <이매진(Imagine)>이란 노래를 만든 배경에는 자신과 일본 신도의 영향이 있었다고 썼다.





게이오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예일대, 컬럼비아 대학에 유학했다. 귀국 후 1967년부터 1970년까지 『브리태니커 국제대백과사전』의 초대 편집장을 맡았다. 외교관이었던 부친의 영향을 받은 덕인지 청년기부터 국제관계나 외교문제에 대한 발언과 평론활동을 통해 일본의 외교평론가이자 유대인 전문가로 활동했다. 일본의 여러 내각에 걸쳐서 고문 활동을 수행했다.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내용은 대단치 않으나 국내에서도 항상 어느 정도의 인기를 끄는 유대인 처세술서 같은 책들이었다. 예를 들어 『세계를 지배하는 유태인의 성공법』(2002), 『유대인 유머의 지혜』(2003) 같은 책은 한국에서도 출판된 바 있다.

그는 1979년 국제승공연합을 중심으로 스파이방지법 제정촉진 국민회의 활동을 통해 본격적인 극우파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후 일본 내 여러 극우파 단체의 핵심멤버로 활동하며 “일본의 대동아전쟁 덕분에 전후 아시아와 유색인종의 해방이 가능했다.” “일본 민족이 앞서 싸웠기 때문에 수백 년에 걸쳐 억압된 아시아·아프리카 여러 민족을 해방되었다”는 등의 망언을 일삼아 왔다. 그는 난징학살사건을 부정했고,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도 부정했다.

문제는 이런 책이 국내에서 출판된 시점이 그가 『추한 한국인』의 실제 저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서울 한복판에서 극우적 망언을 해 뉴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지난 1993년으로부터 10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란 것이다. 현재는 품절이거나 절판 상태이다. 이후 한동안 잊힌 인물이었던 그가 다시 떠오르게 된 것은 지난 2019년의 일이었다.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Miki Dezaki) 감독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主戰場)>(2018)은 2019년 7월 무렵 한국에서도 개봉되었다. 소수의 극장에서만 개봉되었는데, 일부러 극장에 가서 영화를 찾아보았다. 영화 막판에 ‘카세 히데아키’의 말에 분통이 터졌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고난 뒤 페북에도 글을 올린 바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조만간 붕괴할 것이고 그럼 한국은 일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세상에서 가장 친일적인 훌륭한 나라가 될 것이다. 정말 귀여운 나라 아닌가? 한국은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귀엽다.”

지난 2022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말로 죄를 지은 자들이 가는 지옥을 불교에서는 ‘발설지옥(拔舌地獄)’이라고 하는 데 이곳에서는 죄인의 입에서 혀를 뽑아 몽둥이로 짓이겨 부풀린 다음 밭을 갈 듯 소가 혀 위로 쟁기질을 하는 벌을 받는다.

그가 어떤 벌을 받을지야 알 수 없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 상황이 참으로 처참하다.

아무리 세상이 회전목마처럼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잡지 인생 30년을 눈앞에 둔 편집자로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를 가지고 장난치는 자들이 죽지도 않고 권력의 비호 속에 부활하는 것인지 그 뿌리가 참으로 깊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이들을 계속해서 부활시키고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가. 이런 상활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기가 차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가끔은 우리가 분단국가라서 정상국가나 보통국가가 못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저런 자들의 발호를 막지 못해 정상이 아닌 국가란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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