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잠실동, 신천동, 풍납동, 천호동을 거치는 한강-탄천 두물머리에서 광나루 건너편, 그러니까 광진교 남단까지 길을 걷는다. 시간과 허리 상태를 살펴 끄트머리 부분은 유연하게 조정한다. 하루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한때 반짝 갠다는 기상정보 이야기를 듣더니 옆지기가 내게 조그만 삼단 접이 우양산을 건네주면서 말한다: 요즘은 남성도 양산 써요.

 

한강-탄천 두물머리로 다시 가보니 지난주보다 제법 수위가 높아진 게 확인된다. 곳곳에 출입 금지 표시가 있다. 가능하면 지킬 테지만 웬만하면 어길 생각이다, 늘 그래왔듯. 세상 이치가 그렇다. 공무원이 해야 할 일과 시민으로서 내가 선택하는 일 사이에 틈은 언제나 존재한다. 액면대로 납죽 엎드릴 필요도 없고 으레 그렇지 하며 톡탁쳐버릴 일도 아니다.

 

다른 어느 곳보다 탁 트인 느낌을 받으며 나아갈 때 내 눈은 역시 호젓한 길을 더듬는다. 대부분 사람이 다니는 편리한 큰길 아래, 또는 옆으로 난 콘크리트 소로가 지난주보다 더 연속성 있게 놓여 있어서 안정감을 준다. 얼마쯤 가다 보니 제3의 길이 나타난다. 콘크리트 소로 옆 길섶을 걸어서 낸 구불구불한 더 작은 흙길이다. 사뭇 삽상한 기분을 자아낸다.


 

그 구불길은 물과 더 가까울 뿐만 아니라, 끝도 없이 늘어선 버드나무를 계속 마주할 수 있어서 고맙고 고맙다. 그 고마움을 찰나적으로 깨뜨리는 제4의 길이 있다. 한층 더 물 가까이 이끄는 길 아닌 길, 다름 아닌 낚시꾼 길이다. 보행 아닌 탐색 목적으로 걸은 발걸음이 쌓여 제법 도타운 흔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길이 갈 수 없어서 이런 길은 아연 신비롭다.


 

기이하게 생긴 버드나무며 버섯이며 들꽃에 취해 주위를 살피지 못한 채 한참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한강-성내천 두물머리에 닿는다. 그 만나는 풍경을 이리저리 살피며 기리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장소 앞에 우뚝 멈춰 선다. 은빛 철조망으로 둘러막고 적어 놓은 글이 있다: 이 장소는 상수도 취수 지역으로 깨끗한 아리수 생산을 위한 상수원 보호 구역입니다.


 

여기가 취수 지역이라고? 상수도 취수·정수 과정을 잘 알지 못하므로 상식적 판단밖에는 할 수 없는 처지에서 와락 의문이 든다. 아픈 체취를 역력히 풍기는 이곳 물이 내가 먹는 바로 그 물이란 말인데, 정수를 거친다 해도 얼른 수긍하기 어렵다. 수돗물에서 역한 염소(Cl) 냄새가 나는 까닭과 유관하다면 상수원이 팔당 어디쯤이라고 생각한 상식이 몰상식이다.

 

한참을 서성이다 묻는다: 물은 내게 무엇인가, 아니 누구인가? 내가 물을 마셔야만 살 수 있다면, 몸속 물 50%가 나갈 때 내가 죽는다면, 그 먼저 내 몸 70%가 물이라면, 더 먼저 생명체 고분자 3차원 구조가 액체 물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면, 물 없이는 내 본성도 없지 않은가? 물은 몸 구성요소 물질” H2O에 지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 목마르다.


준비해 간 따스한 물을 삼가 부어드리고 나도 마신다. 제의와 동지 천명, 그리고 치유 행이다. 역한 냄새가 나더라도 서울 수돗물을 먹는 일이 시민 의식 아니다. 그 물을 정화하는 일도 시민 의무 아니다. 무엇보다 물 본성, 그러니까 생명 본성, 더 그러니까 세계 본성에 경의를 표하는 일이 먼저다. 차마 여기를 떠나면서 나는 물로 곧장 나아갈 길을 쟁인다.

 

아이고, 천추가 쑤신다. 허기가 맹렬하다. 불친절한 미로를 헤맨 끝에 천호동으로 나온다. 가도 가도 공구상뿐이다. 가까스로 천호역 근처 뒷골목에서 허름한 음식점을 발견한다. 광진교와 운명을 함께하면서 쇠락해진 이 마을 꼬불거리는 좁은 길 위에 서서 오늘 내 운명을 헤아린다. 이런 서사를 빚어가면서 는적는적 뭉그러지는 반제국주의자, 그 말로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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