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지만 비보다 땡볕 걱정하는 물길 걷기다 보니 일기예보를 꼼꼼히 챙긴다. 오전에는 개어 있다가 오후부터 국지성 소나기를 동반한 흐린 날씨가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달리 방도도 없고 해서 느지막이 잠원역으로 향한다. 거기 진입구로 들어가 한강 둔치를 따라 일단 탄천과 경강(京江)이 두물머리를 이루는 곳까지 가기로 한다.

 

잠원역 밖으로 나오면서 하늘을 보고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일기가 예보를 보지 못했나 보구나. 높이 솟은 파란 하늘에 덩달아 높아진 흰 구름은 일기예보와 말 맞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이따금 잿빛 큰 구름이 오지랖을 펼쳐주고 바람이 부채질을 해주어 그나마 중도 포기란 말을 떠올리지 않게 만든다. 그래 한번 가보지 뭐.

 

잠원 변전소와 신반포 아파트 16119동 사이로 나 한강에 이르는 길은 본디 나룻길이었다. 이 나루터는 조선 임금들이 헌인릉, 선정릉 행차 때 이용했고, 도성 사람들은 봉은사 오갈 때 이용했단다. 송파 잠실리와 구분하기 위해 잠실리의 과 신원리의 을 따서 잠원이란 이름이 나중에 생겼으므로, 여기가 본디 잠실나루였다.


 

잠은 누에(). 누에를 길러 그 고치에서 비단을 자아내는 조선 국립양잠소인 잠실도회(蠶室都會)가 이곳에 있었다. 나루로도 잠실로도, 서초구 반포동에서 강남구 개포동에 이르는 이 일대는 상당히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와 전혀 다른 이유에서 오늘날도 여기는 대한민국 최고 중요한 곳으로 군림한다. 땅값·집값으로 말이다.

 

반포동, 잠원동, 압구정동, 개포동은 대한민국에서 땅값·집값으로 1~4위를 차지한다. 여기 그런 아파트에 실제로 살거나 소유하는 부자 대부분은 뿌리 깊은 일제 특권층 부역자 후손 아니면 부역 정권 부동산 투기 광란에 편승해 일약 상류층에 합류한 떼거리다. 저들이 열어젖힌 흑역사를 부둥켜안고 누군가 가슴 칠 뒷날일랑 남아 있을까.

 

한남대교를 지나자 곧바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성채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권층 부역자 권력 집단과 토건 집단이 합작해 세운 부동산 왕국은 노회함으로 건재하다. 강 건너 최신 마천루를 쌍것 취급하는 오만이, 한물간 풍광 속에서 오히려 더욱 그 귀기를 증폭해 댄다. 때마침 저들이 사는 곳과 다른 지평선으로 가는 입구를 발견한다.



 

자전거길과 산책로를 붙여 만든 전형적 강변길, 그 아래다. 콘크리트를 깔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강 가까이 붙은 호젓한 길인데 걷는 내내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한다. 길은 이따금 물과 직접 닿을 수 있는 곳까지 귀띔해 준다. 곡진하게 물 모심을 하고 나면 그 길이 결국 끊어지고 만다는 사실과 마주칠지라도 그다지 섭섭하지 않다.

 

소담한 내 감사와 물을 소외시킨 부역 토건 종자들 행태를 에낄 수는 없다. 뭣에 쓰는지 모르는 시설 또는 인공물은 그렇다 치고 아는 것들조차 거의 예외 없이 유기·방치되어 있는 강변 살풍경이 점점이 펼쳐진다. 대부분 돈을 노리고 만들었으나 실패했다는 넋두리가 수런댄다. 이상한 콘크리트 더미에 홀렸다 빠져나오니 어, 탄천이다.


 

지하철 7호선 청담역에서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탄천-한강 두물머리 풍경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픈 물 몸 냄새가 자욱하다. 안간힘을 쓰며 물과 땅을 치유하는 다옥한 버드나무 숲이 아니었다면 나는 거기를 뛰어서 지나갔으리라. 두물머리를 잠시 살피다가 광나루까지 가려던 본디 여정을 포기한다. 탄천을 조금 더 걷는다.

 

탄천을 따로 걷는 일은 다른 기회에 맡기고 오늘은 양재천과 이루는 꼬마 두물머리를 거쳐 양재천 따라 조금 나아가다가 학여울역에서 마치기로 한다. 하구부터 얼마간 쭉 이어지는 도시 점령군과 마주한 탓에 무심코 꼬마 두물머리를 지나친다. 되돌아가서 찾지만, 모습을 선명히 볼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 다음에 맞은편으로 가야겠다.


 

양재천 나머지 구간도 따로 걷는 기회에 맡기고 점점 무거워지는 허리를 추슬러 역으로 향한다. 정색하고 스스로 다시 묻는다: 제대로인 물 걷긴가? 반걸음 더 곱고 촘촘한 진실을 물으면 한 걸음 더 거기를 향해 내디디도록 팡이실이 춤이 초 인과로 약동한다. 혹시 물 본성 자체를 걷는 카이로스가 들이닥치는 찰나와 마주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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