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왕사』를 읽으면서 김지하가 이래서 김지하구나, 한다. 비록 구름 타고 날아다니는 특유 어법이긴 하나 심지어 원효 『판비량론』까지 언급하다니 천재 끼가 다분한 무당임이 틀림없다. 다만 잡귀 걸러내지 못하는 무당이라 박근혜나 미국에 부역한 일 따위가 안타깝다. 동학혁명이 반제 기치, 척왜 양창의(斥倭洋倡義)를 분명히 했음에도 찐 동학당이라 자처하는 그는 정작 제국주의를 공부하지 않음으로써 범주 인류학과 거리가 먼 담론에 머무르고 만다. 마구 흘러넘치거나 날뛰는 언어는 그냥 내버려 두고 내가 반제 전선에 세울 수 있는 진실만을 감사함으로 전해 받으려 한다.
다른 일요일보다 사뭇 일찍 일어난다. 엊저녁 씻어 놓은 입쌀로 밥을 지어 먼저 작은 보온밥통에 알맞게 담는다. 따뜻한 물도 준비한다. 7호선 전철 상봉역에서 경의·중앙선을 갈아타고 양평역에서 내린다. 지도 보면서 양평시장으로 향한다. 크고 작은 골목을 두루 살피며 사로잡혀 울부짖는 수인(水仁) 이슬(李蝨)을 떠올린다. 거기서부터 역전길을 거쳐 양평군청 사거리를 지나 군청 앞길 거의 끄트머리에 이를 때까지 나는 온몸에 슬픔과 아픔을 가득 담고 걷는다. 마침내 죽음 자리에 선다. 따뜻한 물과 이밥을 올린다. 신을 모시기 위해 조그맣게 한 숟가락 떠낸다. 제사를 드린다.
천천히 그 자리를 세 바퀴 돌아 애도를 표한다. 천천히 그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부활을 예고한다. 나는 스스로 “이(蝨)”라고 부른 이수인이 되어 내 죽음 자리를 망연히 들여다본다. 나를 윤간하고 갈가리 찢어 죽인 곳에 후세 사람들이 세운 정자 이름이 행복정(幸福亭)이다. 나는 묻는다: 그래 그대들은 지금 행복한가? 여전히 왜양(倭洋) 식민지에서 얼마나 행복한가? 대답을 들으려 한 질문이 아니므로 나는 이내 거기를 떠나 황천강(黃泉江)으로 간다. 그 강을 건넘(양근대교)으로써 나는 내 죽음을 오롯이 인정한다. 나는 황천 한복판을 가로지른 다음 황천강으로 돌아온다.
이제 나는 죽음길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 황천강을 건넌다(양평교). 나는 죽음을 이기려 내 죽음 자리, 아아 그 행복정으로 돌아간다. 참으로 행복한 세상, 더는 제국주의가 절멸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아이와 여성과 바리가 짓는 팡이실이 세계를 세우러 간다. 내가 끌려왔던 길을 거슬러 간다. 양평시장 저 야만의 저자로 당당하게 즐겁게 들어간다. 거기서 밥, 어미, 생명물을 되찾는다. 해월(海月) 스승이 가르치신 물의 길, 모심(侍)의 세계 문을 열어젖힌다. 나는 그 도통을 이어받아 평등과 평화, 자유가 넘실대는 팡이실이 세계를 마침내 세운다. 내가 바로 황천강 화신 바리공주다.
황천강은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요단강이 아니다. 황천강은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며 아우르는 역설의 물이다. 죽음의 적요와 생명의 포효가 갈마들며 세계를 정화하고 생육하는 모성의 경수(經水)다. 바리공주가 건너갔다 건너온 그 물이며, 마침내 되돌아와 생사를 공평하고 겸손하게 주관하는 바로 그 자리다. 해월 스승과 나 수인이 꿈꾼 물이다. 나는 이어받은 도통을 다른 이, 곧 오늘 내게 밥 한 그릇을 지어 먹인 수염 허연 남자 노인에게 건네주고 황천강 가에 길이 머물러 간다. 이승 떠난 지 120여 년 만에 이리도 따스한 이밥 모심 받았으니 보통 명사로 행복하게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