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6월 15, 16일 이틀간 스위스 중부의 루체른 호반에 있는 뷔르겐스톡 리조트에서 제1차 우크라이나 평화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주최국인 스위스는 160개국에 초청장을 보냈는데, 지금까지 100개국 정도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히 많은 나라가 참석 의사를 밝힌 것 같으나 어떤 나라가 가고 가지 않는지 면면을 살펴보면 우크라이나전쟁을 놓고 세계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 회의는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제출한 ‘평화공식(peace formula)’에 근거해 조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공식이란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여한 젤렌스키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수립하기 위한 요구조건으로 내건 10개 항목을 가리킨다. 젤렌스키가 제안한 것이어서 국제사회에서는 ‘젤렌스키 평화공식’으로 통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평화공식이 우크라이나 측에서 2022년 말의 전황을 놓고 작성한 것인지라 이후 1년 반 이상 진전된 전쟁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2022년 가을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이 전쟁 직후 점령한 하르코프 지역과 헤르손 지역 일부를 탈환하여 자국군이 승세를 쥐었다는 생각을 가졌을 공산이 있다. 그러나 그때 우크라이나의 성공은 병력과 무기의 엄청난 손실을 겪고 얻은 ‘피루스의 승리’였고, 바로 러시아군의 반격을 초래한 것이었다.

러시아군은 2022년 말부터 돈바스 지역의 군사 요충지 솔레다르를 공격하기 시작해 2023년 1월 16일에 함락하였고, 5월에는 더 큰 요충지인 바흐무트까지 함락함으로써 큰 전과를 올린다. 그에 맞서 우크라이나군은 6월 4일에 자포리자 지역을 중심으로 대반격을 시도했으나 약 석 달 지속된 전투에서 엄청난 손실을 당하고 패배했다. 반면에 러시아군은 겨울부터 ‘공세적 소모전’을 펼치며 우크라이나군을 압박했고, 12월 26일에는 또 다른 요충지인 마린카를, 2024년 2월 18일에는 아브데예프카를 함락했다. 이후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바흐무트를 빼앗긴 뒤 큰 희생을 치르며 벌인 반격을 통해 탈환한 인근 클리시치브카를 최근에 다시 함락하고, 아브데예프카의 인근 군사 요충지인 오체레티노와 같은, 작지마는 요새화된 마을들을 하나씩 잠식해가는 중이다. 최근에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국제경제포럼에서 푸틴이 한 발언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해 들어 47개 마을 또는 도시를 함락했다고 한다.

지금 가장 큰 전투는 차소프 야르라는 도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데, 이곳이 함락되면 서쪽의 소도시 콘스탄티노프와 이어서 돈바스 지역 우크라이나군 사령부가 있는 크라마토르스크가 위험에 빠질 공산이 크다. 차소프 야르는 조만간에 함락된다는 것이 관측자들의 예측이다. 러시아는 2022년의 퇴각 이후 전선을 펼치지 않던 하르코프 지역에서 볼찬스크와 립치 등에서도 공격을 펼치고 있다. 키예프 북쪽의 수미 지역에 대한 공격도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군사적 접촉선이 확장되면 될수록 병력과 무기가 태부족인 우크라이나군으로서는 처지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은 개전 이후, 특히 2022년 겨울 이후 지금까지 러시아의 일방적 우위 속에 전황이 전개돼온 셈이다. 하지만 며칠 후에 열릴 우크라이나 평화회의는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주최 측은 러시아는 초대하지도 않았다. 그런 점 때문인지 이번 회의는 열려도 내실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주요 국가들이 불참하거나 국가 수장들 대신 하급 관리를 보내려는 모양새도 보인다.

며칠 전 젤렌스키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1회 아시아 안보 회의(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하여 스위스 평화회의에 많은 국가가 참석해줄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후원자인 미국에서도 바이든 대통령 대신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가 참석한다고 하고, 중국과 인도, 브라질, 남아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멕시코, 니카라과 등 브릭스 국가들을 포함한 다수의 남반구 국가들이 참석하지 않거나 참석하더라도 주요 인사가 아닌 하급 관리를 보낸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의 주요 안건은 젤렌스키 평화공식에 근거하고 있지마는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이 제안하여 그동안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우크라이나 평화공식 국가안보보좌관 회의’의 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도 하다. 평화공식 회의의 1차 회의는 2023년 6월 24일 덴마크의 코펜하겐, 2차 회의는 8월 5〜6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 3차 회의는 10월 28일 몰타, 4차 회의는 2024년 1월 14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렸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회의가 내실을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회의의 명칭이 말해주듯이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출한 ‘평화공식’ 안을 기초로 하여 회의의 의제가 정해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젤렌스키의 평화공식은 모두 10개 안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에 러시아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 적어도 3개다. 그 셋은 “우크라이나 영토 복원”, “러시아군 철수 및 기존 국경 회복”, “러시아 전쟁범죄를 기소할 특별재판소 설치”를 가리킨다. “우크라이나 영토 회복”과 “러시아군 철수 및 기존 국경 회복” 요구는 사실상 거의 같은 내용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2022년의 전쟁과 2014년의 크림반도 병합 이전의 상태로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크림반도는 2014년에 우크라이나에서 합법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부를 미국의 사주를 받은 친서방 세력이 쿠데타로 전복한 뒤 러시아가 점령하여 주민투표를 거쳐 러시아에 귀속되었는데 젤렌스키는 그것을 원상태로 돌려놓으라고 하는 것이고, “러시아군 철수 및 기존 국경 회복” 요구는 2022년 전쟁 이후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과 헤르손, 자포리자 지역에서 빼앗은 영토를 되돌려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 전쟁범죄를 기소할 특별재판소 설치”는 그동안 러시아군이 전쟁을 수행하며 범죄를 저질렀다며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에 해당한다. 러시아군이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면 당연히 재판받고 처벌받아야 하겠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저지른 전쟁범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영토와 관련한 요구는 전쟁에서 이기는 쪽의 주장이 관철될 공산이 높은데, 그동안 전황을 놓고 보면 젤렌스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셈이라 할 수 있다.

평화공식 회의가 실효성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젤렌스키가 제출한 평화공식에만 근거한 점 외에도 전쟁의 다른 당사자인 러시아의 입장을 배제한 채 진행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러시아의 배제는 중국이나 브라질, 인도 등 주요 남반구 국가들이 회의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두게 한 원인이 된 셈이기도 하다. 이달 중순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리는 평화정상회의도 그런 문제점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 열려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평화공식 국가안보보좌관 회의든 평화정상회의든 모두 젤렌스키의 평화공식에 기초해 의제가 정해진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기조 속에 열린다고 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여론이 한동안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쟁 초기의 일이다. 러시아군이 특별군사작전 명의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 24일 유엔에서는 러시아의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에 채택된 바 있다. 당시 결의안에 찬성한 나라는 141개국이었다. 하지만 지금 국제여론은 그때와는 크게 다르다. 러시아가 ‘도발 받지 않고’ 다른 주권국가를 침략했다는 서방측의 주장이 처음에는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평화를 위해 양국이 맺은 민스크 협정을 위반한 것은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들이었다는 것, 전쟁 발발 직후 두 나라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거의 다 타결한 휴전 협정을 무산시킨 것도 서방과 우크라이나였다는 것 등이 알려지면서 국제여론 지형이 크게 변했다. 더구나 작년 10월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침공을 이유로 이스라엘이 가자지역에 악랄하고 잔인한 공격을 가해 어린이와 여성이 다수인 민간인 수만을 살상하고 더 많은 부상자를 낸 잔학 행위가 백일하에 드러난 것도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이스라엘이 그런 포악한 행위를 하도록 돕는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과 유럽국가들이라는 것을 알고 세계 인구의 87%를 차지하는 남반구 국가들의 여론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스위스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평화정상회의는 성공할 가능성이 아주 낮다. 그런데도 회의가 열리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는 분석이 있다. 지금 세계 각국에 회의 초청을 독려하는 데 분주한 것은 주최국 스위스가 아니라 우크라이나라고 알려진다. 젤렌스키가 싱가포르의 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한 뒤 바로 필리핀으로 가서 그곳 마르코스 대통령을 만난 것도 아시아 국가들의 회의 참석을 독려하기 위함이었다. 젤렌스키가 그런 행보를 하는 것은 그의 개인 사정 때문이기도 하다.

젤렌스키는 5월 21일부로 더 이상 우크라이나의 합법적 대통령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의 임기는 끝난 셈인데 전쟁을 이유로 그동안 계엄령을 선포해와 대선을 치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도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중이다. 젤렌스키의 대통령 임기가 언제 끝나는지는 우크라이나 헌법에 따라 판단할 문제이겠지만, 러시아 측에서는 벌써 그를 합법적 지도자가 아니라 권력 찬탈자라며 몰아붙이는 기세다. 젤렌스키가 회의 주최국인 스위스를 대신해 나서서 바이든과 시진핑에게 회의 참석을 호소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많은 국가 정상이 참석해달라고 로비에 나서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전쟁의 주요한 한 당사자인 러시아를 배제하고 진행될 예정인 우크라이나 평화정상회의가 제대로 모양새를 갖추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암운이 드리운 모양이 된 것은 집단서방의 외교적 무능을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진정한 평화정상회의가 되려면 우크라이나 대통령, 그것도 이제는 합법성을 의심받게 된 대통령이 나서서 회의를 조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러시아의 푸틴도 초빙해서 전쟁의 두 당사자, 또는 사실 미국이 우크라이나 배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바이든도 참석한 가운데 각국의 입장을 조율해야 평화안이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면 미국의 하수인 노릇만 하는 유럽국가들 외에 중국과 인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남아공, 멕시코 등도 국가 정상을 보내 조력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서방, 특히 미국이 그런 외교력을 발휘할 것 같지는 않다. 평화를 명분으로 한 국제회의가 열리지마는 그 덕분에 평화가 올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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