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엔 조금 일찍 일어나 움직이기로 한다. 두물머리로 갈 생각이 있어서다. 일요일 중앙선은 사람은 물론 자전거까지 더해져 매우 혼잡하다. 혼잡을 조금이라도 피하려면 양수역에서 내려 남한강 쪽부터 걷고, 그다음 북한강과 만나는 언저리를 걸은 다음 북한강 물가 길 타고 운길산역으로 가 돌아온다, 이렇게 가닥 잡는다.
양수역은 의외로 그리 붐비지 않았다. 아마도 오후에 비 오신다는 예보 탓일 테다. 스마트폰 지도로 용담리 가정천과 남한강 마지막 물길이 만나 이루는 만 모양 물 서쪽 숲길을 찾기 위해 사람 다니는 차선이 그어지지 않은 차도로 들어서다 몇 걸음 못 가고 그만두었다. 급회전하는 지방도는 바위투성이 산등성길보다 더 무섭다.
동쪽 둔치에 만들어 놓은 산책로로 방향을 바꾼다. 그 끝에서 서쪽을 향해 난 양수로를 걸어 남한강 큰 물길과 만난다. 6번 국도 경강로와 만나는 곳에서 한참 간 다음 더는 나아가지 않고 높은 언덕에 올라 남한강을 내려다본다. 저 물길 시원인 오대산 우통수 발치 간평리 마을 내 고향을 떠올린다. 언제이든 다시 걸을 곳이기에.
돌아오는 산모퉁이에 무덤이 하나 보인다. 가까이 인기척 있어 다가간다. 파평 윤씨 선산이란다. 이 산을 넘어 양수역 가는 길이 있는가, 물으니 그렇단다. 아까 실패를 만회할 양으로 거침없이 숲으로 들어갔으나 이내 길을 잃었다. 그가 있다고 한 산길은 옛 기억일 가능성이 크다. 늘 그랬듯 나는 직진했다, 이번엔 물에 닿으려.
산은 작지만, 숲이 커서 길 잃은 자는 아뜩해진다. 홀연 길 하나가 보인다. 마치 익숙한 산 사람이 남긴 증거처럼. 그런데 이상하다. 그 산 사람이 아이 또는 난쟁이라면 모르지만, 어찌 기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 이토록 많을까? 이제 길이 트이는구나, 하는 찰나 소름이 훅 끼쳐온다: 아, 바로 이게 짐승 길이구나. 아이고, 맙소사!
회룡 계곡 때 사람 발자국과 달리 짐승 길은 끊어지지 않고 샘이 있는 곳과 닿아 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샘에서 물을 받던 등산객들이 놀란다: 거기 워낙 가팔라 길이 없는데요? 내가 웃으며 일부러 물 가까이 걷기 위해 길을 내며 왔다고 하니, 다들 고개를 갸웃한다. 그 와중에 기어이 물에 닿아 손을 담갔음은 똑 사실이다.
알고 보니 그렇게 간 길은 처음 무서워 그만둔 그 길과 마주 이어져 있었다. 거꾸로 한 바퀴 돌았으니 목적 달성이 분명하다. 거기부터 내 발걸음은 헤매지 않고 용담리를 관통한 다음, 양수리 물가 길을 샅샅이 돌았다. 두물머리 나루에서 두 한강 물과 손을 맞잡았다. 북한강 물과도 손뼉을 마주쳤다. 네 시경 운길산역에 닿았다.
지지난 주 안성 저수지 물·멍에서 물과 만난 뒤 사실 어떻게 숲에서 물로 이동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냥 오늘 두물머리로 향했다. 물은 숲과 특성이 달라 뭍 생명 인간을 쉽게 단도직입으로 품어 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태초에 숲은 물이었다. 지구 팡이실이 창발로 물기 던 숲을 발현했을 뿐. 숲에서 물로 가는 길은 숙명이다.
운길산역 아래 북한강 물에 다섯 번째 손을 담금으로써 내 첫 물나들이는 마무리되었다. 앞으로 이 걷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나는 모른다. 반걸음 앞을 내다보고 한 걸음씩만 내디디려 한다. 팡이실이, 그 살아 움직이는 현실에 내가 극진히 참여하는 한, 물은 물로 그 길을 열 터이므로. 바야흐로 새로운 한 시절이 일어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