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봄비가 장맛비처럼 오는 일요일이다. 몸을 한껏 가벼이 한 다음, 젖히지 않고도 머리 위 숲 풍경을 보기 위해 투명 비닐우산을 찾아 든다. 마을버스를 타고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앞에서 내려 관악산 줄기 나지막한 숲으로 들어간다. 지난주와는 정반대로 북쪽 길로 접어든다. 충무공 선영과 주위 숲을 찬찬하고 촘촘하게 걸으려 함이다.

 

덕수공원 정문에서 올라가는 경로를 택하지 않는다. 꿈이 위 숲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샛길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꿈과는 다른 풍경이지만 나는 어렵지 않게 길 아닌 숲길을 걸어 묘역으로 들어간다. 정정공(貞靖公) 이변과 정경부인 양성(陽城)이씨 무덤은 찾기 쉽다.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다. 제물을 올린 뒤에 감사 말씀을 드린다.

 

충무공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묘 앞에서 쑥대 하나를 챙긴다. 남은 후손 묘들을 꼼꼼히 돌아보고 나서 공원으로 조성한 공간으로 이동한다. 예상보다 규모감이 떨어지고 허투루 가꾼 느낌을 물씬 풍긴다. 최근에야 세웠을 과시성 묘비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압권은 박정희식한옥 건물이다. 충무공을 배출한 가문에도 식민지 그림자는 어김없구나. 표표하게 떠나간다.


 

비에 젖은 몸도 무겁지만, 충무공 선영 풍경 때문에 마음이 더 무겁다. 나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강감찬 생가터로 간다. 탑을 빼앗겨 버린 낙성대 풍경도 오늘따라 처져 보인다. 나는 정색하고 결기를 세운다. 아까 거둔 쑥대를 유허비 아래 신목으로 둠으로써 두 영웅 사이를 잇는 의례에 갈음한다. 내 상상 시공이 빚어내는 서사 사건이다.

 

충무공이 인헌공을 삼가 뵙니다.”

 

그렇다. 오늘을 부끄럽게 사는 무지렁이 부역자 처지에서 각성하기로는 지푸라기 신주라도 모실 일이다. 거대와 치밀을 동일 무기로 구사하는 특권층 부역자 언··권과 맞설 때, 날카로운 이성은 빼빼 마른 관념이 되고, 진실 무비 과학은 그림의 떡이 되니 말이다. 내가 불러올 힘은 현실 세계 반대편 저 부정당하는 존재한테서나 나온다.

 

숲을 떠나 도시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교보 가서 온갖 뜨르르한 책에 눈 정을 붙여봐도 심사가 이미 관심을 놔버렸다. 국시 한 그릇 먹고 다시 길을 나서 인사동 뒷골목을 지나는데 담벼락이 나지막이 부른다. 홍범도 장군이 눈으로는 내 너머를 보고, 손가락으로는 내 심장을 가리킨다. 내게만은 덕수공원이 이순신 숲이어야만 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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