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bé Pierre가 말했다: Le contraire de la misère ce n’est pas la richesse. Le contraire de la misère, c’est le partage. 빈곤의 반대는 부유가 아니라 공유, 그러니까 나눔이다, 그런 말이다. 이 말에 따르자면 신자유주의를 기치 삼은 제국주의는 99.9% 인류를 빈곤으로 몰아가는 음모 자체일 수밖에 없다. 자본은 그 마름 가운데 센 한 놈일 따름이다.

  

다른 맥락에서 곱씹을 우리 속담 하나 떠올린다: 가난 구제는 나라/나라님도 못 한다. 가난 구제가 어렵고도 끝없는 일이라는 말로 흔히 이해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라/나라님은 부자를 가리킨다. 부자는 빈자를 구제하지 않는다. 빈자는 빈자가 구제한다. 그게 바로 나눔이다. 나눔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가장 맑은 영혼으로 살았던 권정생이 말한다.

 

겨우겨우 사는 삶이 가장 잘사는 삶이다.”

 

나눔 이치를 꿰뚫는 표현이다. 이 이치가 내 한평생을 관류했음에도 깨닫지 못해서 고마워하지 못하다가 최근 끈덕지고 빈틈없이 이어지는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엄밀하게 깨닫고 고마워하게 됐다. 제법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제자 하나가 뜬금없이 전화로 안부를 물은 데서 사건은 처음 벌어졌다. 그런 연락은 백발백중 그냥 안부 인사가 아니지 않던가.

 

그 입에서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나는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바와 사뭇 다른 까닭에서 놀랐다. 왜냐하면 그는 정승이고 나는 거지였으니까. 게다가 적어도 내가 아는 그에게 그 돈은 푼돈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절반을 다른 사람한테 꾸어 채워서 보냈다. 약속한 날을 어기기는 했지만, 그 돈은 돌아왔다.

 

물론 그다음 이야기는 더욱 놀랍게 이어진다. 얼마 뒤 그보다 조금 적은 돈을 다시 요청했고, 나는 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냈다. 얼마 뒤 그는 그 돈의 1/10가량을 요청했다. 그 뒤 두 번 더 같은 요청을 되풀이했다. 나는 드디어 물었다: 그 푼돈이 도움이 되기는 한가? 그렇다고 한다. 그렇겠지. 암은. 나는 그런 경우를 아직도 상상해 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돈 아닌 좋지 않은 상황 소식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서 보내지면서 아홉 달째 마지막으로 접어들었다. 전화가 왔다. 더는 죄송하단 말조차 하지 못하겠다면서도 그가 대화를 끊지 않는다. 여전히 그 푼돈이 유용하구나, 짐작했다. 실은 나도 결제해야 할 돈이 필요해서 시한을 주고 이 부분만 그때 먼저 갚는 것을 조건으로, 다시 돈을 보냈다.

 

다음 날 새벽 다른 날보다 일찍 눈이 떠져 일어나 보니 그에게서 전화가 세 번이나 와 있었다. 이번에는 그 푼돈의 반을 마지막이라면서 요청했다. 다급했던 그 상황에서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를 헤아리며 아침 되어야 보낼 수 있는데 그래도 유효한가, 문자를 넣었다. 내 계좌에 그 정도 돈도 없어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대답을 기다리면서 지갑을 열어보았다. 놀랍게도 그가 요청한 돈에서 부족한 딱 그만큼 남짓이 현금으로 들어 있었다. 나는 서둘러 은행으로 향했다. 채워서 송금하고 나니 계좌에는 이제 3,626원 있다. 완전히 텅 비지 않았으니 겨우겨우에 미달일까. 카드로 넣고 꺼낼 수 없는 돈이라 사실상 0원이니 그 수준으로 쳐도 괜찮을까. 홀연 내면이 울린다.

 

“쌀 한 톨 남으면 빈 독이 더 잘 느껴진다.”

 

한의원에 앉아 빈 지갑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여기 있던 푼돈은 숲 걷기를 하다 보면 카드로 결제하지 못할 만큼 영세한 음식점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 경우를 대비해 넣어두었던 거다. 그마저 털어냈으니 단식 숲 걷기도 하겠구나, 중얼댄다. 바로 그 찰나, 내 영혼은 절대 고요로 술렁인다. 여기까지 오라고 숲 생명들이 초대했음을 깨달아서다.

 

제자 편에서 보면 열 달째 자기 애옥살이를 함께해 준 가난뱅이 선생이 더없이 고마울 테고, 내 편에서 보면 빚두루마기 주제에 탈탈 털어 제자 곤경 나눈 일로 그를 방편 삼아 영적 삶 일깨우려 하신 팡이실이 니마고마께 엎드려 큰절해야 할 테다. 팡이실이 니마고마는 반제국주의 전사, 곧 나눔 주체들이다. 3,626원은 차고도 넘치는 군자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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