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4월 19일은 내게 오직 사월혁명 기념일이었다. 2019년 오늘, 한 청년의 형제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는.
그는 내게 상담 치료를 받은 계기로 맺어져 오랫동안 도타운 인연을 이어 왔다. 보통 사람 인생에서는 가 닿을 일이 거의 없는 살인, 재판, 교도소 같은 말에 휘감겨 삶이 송두리째 망가진 그가 온전한 정신 상태로 살아가기란 불가능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우울과 숨 막히게 덮쳐오는 강박을 견디다 못해 찾아왔다. 나는 극적 처방으로 숨통을 틔우고,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그가 일상으로 복귀하도록 도왔다. 내 손 붙들고 아슬아슬 살아가며 아득함을 조금씩 지워내던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는 일거에 무너졌다.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습격당해 버둥거리다가 모진 삶을 홀연히 놓아버리고 만 것이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 일주일 앞두고.
만나기로 약속한 날 그의 영혼과 함께한 5년 전 술자리
나는 육친을 잃었을 때보다 더 크고 슬프게 울었다. 내 나름 삼년상을 치른 뒤 이제 보내주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별난 말투, 울고 웃는 모습, 특유한 앉음새, 이따금 쓸어올리곤 하던 삼단 같은 머리채, 안주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주잔 들어 올리던 갸름하고 기다란 손가락···이 더욱 또렷하게 떠올랐다. 눈물도 마를 눈치를 보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오늘도 마찬가지.
한의사인 내가 왜 하필 상담 치료하는 길을 택해 이런 슬픔을 한껏 끌어안고 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필경 내 목숨 고갱이에 새겨진 무엇이 있을 테다. 그저 감사함으로 쭉 간다. 1960년 오늘 일제 부역 독재정권에 맞서다 총탄에 스러지신 분들에 비하면야.
그가 내게 써준 쉴리 프뤼돔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