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미국의 재무장관 재닛 옐런이 이달 초에 중국을 다녀갔다. 그녀는 작년 7월 초에도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중국을 찾은 것은 미국이 중국과 풀어야 할 현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련해서 중국의 관영 환구시보 영문판에 옐런의 방중 의미를 놓고 전임 편집장 후시진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고문이 올라왔다. “옐런의 중국 방문, 누가 누구한테 청질하는지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이 지금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제목이라 하겠다.

후시진은 자신의 글에서 독자의 관심을 중국에서 누가 미국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재무 장관이 중국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집중시킨다. 미국이 원하고 부탁할 것이 있으니 재무 장관을 보내지 않았겠느냐는 시사인 것이다. 과연 미국은 이번에 중국에 와서 큰 부탁을 했던 것 같다. 후시진은 이렇게 말한다. “방문 기간 그녀[옐런]는 중국이 전기차와 태양전지판의 생산능력을 억제하고 이들 제품의 저가 수출을 방지할 것을 특히 강조했다.” 기고문의 제목을 배경으로 하여 읽으면, 이 말은 미국이 중국에 좋은 물건 너무 많이 그것도 너무 싸게 만들지 맙소사 부탁한 것으로 들린다.

옐런이 방중 기간에 중국 측에 제시한 요구에 대해 나온 논평이 있어서 두 개를 접했다. 하나는 마이클 로버츠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China’s unfair ‘overcapacity’”)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운영하는 Geopolitical Economy Report에 벤 노턴이 올린 팟캐스트(“Is China producing too much? US 'overcapacity' accusations: new tactic in economic war”)였다. 이들 논평에서 공통으로 언급되는, 미국이 중국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과잉 생산’이라는 것이다. 후시진의 기고문에서도 지적되고 있듯이, 미국은 지금 중국에 너희가 너무 좋은 것을 너무 많이 생산하고 있으니 그것을 중단하라고 하고 있다. 옐런이 이번에 중국을 찾은 것도 그 말을 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후시진은 옐런이 중국에 와서 청질을 하고 갔다고 하지만, 로버츠와 노턴은 미국이 중국에 위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 대해 전기차와 태양전지판의 생산능력을 억제할 것을 부탁했다기보다는 요구한 것이라는데, 미국이 그렇게 한 이유는 뻔하다. 자기들은 그런 고급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할 능력이 없는데 중국은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을뿐더러 그것도 아주 싸게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을 방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미국의 그런 요구를 후시진은 청질로 보고, 로버츠와 노턴은 위협으로 보는 것인데, 사실 내용이 서로 다르진 않다. 미국으로서는 어쨌거나 중국이 앞서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미국은 청질을 해도 정말 못되게 하는 것 같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요구할 것이 있으면 자기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상대방에만 선물을 요구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하지만 옐런은 이번에 중국에 요구한 과잉 생산 중단에 대한 아무런 보상품도 갖고 오지 않았다. 청질을 하면서도 그렇게 못되게 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해오면서 보여준 일관된 태도이기는 하다. 미국은 자신이 정한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관장해오면서 자신이 하는 것은 모두 사리에 맞고 정당하다고 우기는 데 익숙한 나라가 아닌가.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중국이, 미국이 중단하길 원하는 과잉 생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중국의 과잉 생산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이 최근에 들어와서 미국은 만들어 낼 수 없는 5G,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 좋은 물건을 싸게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그 바람에 세계의 생산력 지도가 대판 바뀌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기준 미국은 세계 GDP의 50%, 세계 산업 산출량의 60%, 상업용 선박의 70%를 차지할 만큼 국력이 막강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과거의 영화일 뿐이다. 전기차 생산에서도 미국은 중국에 뒤진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전기차 최저가격이 49,130달러인 데에 비해 중국 BYD 보급형 전기차 가격은 9,695달러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중국차의 성능이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란다. 사실이 그렇다면 세계시장에서 테슬라는 BYD의 경쟁 상대가 될 수가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새로운 냉전이 시작된 상황이다. 이 냉전은 제2차 냉전에 해당한다. 제1차 냉전은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펼쳐지다가 1990년대 초에 소련의 해체와 함께 끝났다. 당시의 냉전 해소는 세계인에게 평화공존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후퇴로 ‘역사의 종언’이 고해진 가운데 세계는 미국이 주도한 가치-기반 국제질서에 포획되었고, 냉전 시기보다 훨씬 더 폭력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사회주의의 후퇴가 자본주의의 득세로 이어진 이상 그런 결과는 당연했다고 봐야 한다. 자본주의는 극소수의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온갖 착취와 수탈, 침략, 노략질을 일삼는 것이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냉전이 종결되었다고 지정학적 갈등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때부터 미국의 일방적 폭력이 행사된 결과 세계는 유고슬라비아 폭격, 이라크 전쟁, 리비아 전쟁, 소말리아 전쟁, 시리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냉전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폭력과 전쟁을 겪게 된다. 단, 그와 함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흐름이 강화됨으로써 세계의 경제지도에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 중국이 미국이 장악한 WTO에 가입한 것이 좋은 예다. 미국은 중국이 언제까지 가치 생산 사슬 저 아래에서만 머물며 자국이 필요로 하는 싸구려 상품을 더 싸게 만들어 제공해줄 것으로 믿었겠으나, 오판한 셈이다. 2010년대에 들어와서 중국의 굴기가 분명해지자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이기 시작하고, 세계는 이제 제2차 냉전에 들어간 형국이 되었다.

미국은 최근에 중국을 까놓고 자국의 주적으로 상정해놓고 있다. 이런 모습이 처음 나타난 것은 트럼프 대통령 재직 시기였지마는, 현임 바이든이 집권한 뒤에도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적대적 태도는 그대로 유지되는 중이다. 이번에 옐런이 중국을 찾은 것은 그래도 양국 간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며 공존을 모색한다는 취지도 있지마는 중국의 ‘과잉 생산’ 문제를 제기한 것을 보면 중국을 제압하려는 미국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제1차 냉전은 미국이 우위를 차지한 가운데 미국과 소련의 경쟁 형태로 진행된 셈이다. 두 나라는 초강대국으로서 군사적으로는 서로 팽팽하게 맞섰지마는 경제적으로는 소련은 미국의 상대가 아니었다. 제2차 냉전 구도는 이전과는 다르게 형성되었다고 봐야 한다. 아직도 미국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세계 최강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청질하러 왔건 위협하러 왔건 옐런이 중국에 와서 과잉 생산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이제는 미국이 중국보다 경제경쟁력에서 뒤처진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구매력지수로 보면 중국의 GDP가 미국의 그것을 앞선 것이 이미 2016년이다. 미국은 돈 많은 나라라지만 돈 즉 화폐는 생산자본에 투자되지 않고 미국에서처럼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만 투자되면 가공자본이 되어 경제를 오히려 망친다. 미국은 이미 탈산업화한 지 오래되었고, 반면에 중국의 산업생산력은 세계 최강임이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생산력만 높은 것만이 아니라 고급기술 부문에서도 미국에 뒤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과잉 생산 능력을 놓고 미국의 재무장관이 문제 삼으려 중국을 찾은 것은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증거다. 세상은 바뀌었다.

문제는 중국이 미국을 능가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윤석열 정권이 잘 나가던 중국과의 관계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체계는 지난 500년 이어져 온 서방의 굴기와 세계제패의 지배적 흐름에서 벗어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 등 브릭스 국가들의 부상에서 볼 수 있듯이 다극적 세계질서가 형성되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은 우정 이 흐름에 역행하는 모양새다. 눈앞에 19세기 말 조선조의 상황이 어른거린다. 당시 조선은 세계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대응하지 못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한 바 있다. 한국이 그런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막 치른 총선에서 좌파 세력이 폭망한 것을 본지라 우울한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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