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황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글을 그대로 싣는다.



조선 후기 가야산 ‘묘암사’에는 석탑이 하나 있었는데, 이 석탑에는 송나라 황제 진상품인 용담승설차(龍潭勝雪茶)와 그 밖의 진귀한 물건이 소장되어 있었다. 당시 바로 이 탑 자리에 묘를 쓰면 후손 중에서 왕이 두 명이나 나온다는 주술이 떠돌았다. 이 주술을 굳게 믿은 대원군은 묘암사를 사들여서 불을 질렀다. 그리고는 연천에 있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그 석탑의 자리에 이장하였다. 묘실에는 석회벽을 두텁게 발라 도굴을 못 하게 하였다. 훗날 독일 상인 옵페르토가 도굴범 조직을 만들어 행담도에 배를 정박한 후 밤중에 몰래 도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도망갔던 역사가 있다.

주술의 효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원군은 고종과 순종 두 명의 후손이 왕이 되는 가문의 영광을 누렸지만, 며느리 민비에 의해 수모를 당하고 나라가 망하는 치욕을 겪게 되었다. 민비는 대원군보다 한술 더 떠 아예 주술에 미쳐 일개 무당을 ‘진령군’이라는 작위를 주고 전국 곳곳에 산신을 모시는 사당을 지어 왕실의 안녕을 빌었다. 그러나 끝내 왜인의 칼에 베이고 시신이 불태워져 암매장되고 말았다. 조선을 망하게 한 일등공신은 주술의 힘을 신앙처럼 믿었던 황실의 가족들이었다.

신비주의 학문으로 일컬어지는 ‘오컬트(Occult)’는 과거 서양 사회에서 주술이나 유령 등의 영적 현상에 관해 탐구하고 그것에 어떤 원리나 규칙이 있다고 믿으며, 이를 정치와 생활에 적용했던 신념을 가리킨다. 라틴어 ‘오쿨로(óccŭlo)’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씨앗을 흙으로 덮다’, ‘숨기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숨겨진’, ‘비밀의’라는 뜻이 파생되었으며, 이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신비학(神祕學)’이다.

이 신비주의 학문의 분파 가운데 ‘수비학(數秘學)’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여 숫자와 사람, 장소, 사물 등의 사이에 숨겨진 의미와 연관성이 있다고 믿으며,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 어떠한 신비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설이다. 단순히 숫자만이 아니라 마방진이나 마법진의 도형 또한 수비학에 포함된다. 이를테면 ‘4’ 자를 죽을 ‘死’ 자와 연관 지어 재수 없다고 피하는 것이나, ‘7’ 자를 행운의 숫자로 여기는 것 또한 수비학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천공’이라는 무속인의 숫자놀음이 연일 화제이다. 이 무속인을 멘토로 삼고 그들의 말을 하늘의 운명으로 받들고 순종하는 이 나라 통치자를 보면 조선이 망할 때와 상황이 너무나 유사하여 마음이 몹시 착잡하다.

손바닥에 ‘王’자를 새기고 생방송 토론회에 참석했던 일이나, 청와대에 죽음의 기운이 서려 있다며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초유의 사태는 모두 ‘천공’의 작품이다. 그의 논리를 빌자면 ‘二’에다 ‘十’을 합치면 ‘王’이 되고 여기에다 ‘百’을 합치면 ‘皇’이 된다. ‘2×10×100’은 ‘2,000’이 된다. 그러므로 숫자 2,000은 제왕의 통치술을 상징하는 숫자가 된다는 해괴한 논리이다.

천공의 주술을 실제로 국정에 적용했던 사례를 보자면 기막힌 정도가 아니라 경악할 노릇이다. 조선을 망하게 했던 숨은 주역이었던 죽은 진령군이 환생을 했단 말인가?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학교폭력 수사관 2000명 증원’,
‘비수도권 취업 청년지원 2000명’
‘인천대교 통행료 2000원 인하’
‘오염수 방류 어민지원 2000억’
‘대구 로봇테스트필드 2000억’
‘장병급식비 2000원 인상’
‘늘봄 학교 2000곳’
‘국민 만남 2000명’
‘공무원 승급 2000명’

지난주에 용산 윤 씨가 사전 선거를 한 곳이 부산 강서구 명지 1동 행정복지센터였는데, 이곳의 주소가 ‘명지동 2000번지’였다. 그곳은 아무런 기반시설조차 갖춰지지 않은 허허벌판이었다. 이것이 과연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만 이루어진 일이었을까?

나는 지금 소름이 오싹 돋는다. 이들은 과학이 종교의 허상을 밝혀낸 금세기에서조차 여전히 미토스의 신화적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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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이영표는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고 했다. 일개 스포츠 경기의 선수조차도 인기나 명성에 앞서 실력의 검증을 요구하는 것이 세상 사는 이치요 사람을 선발하는 기준이다. 하물며 일국의 대통령 자리에 있어서 더 말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대통령의 직분이야말로 초보 정치인이 ‘국정을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준비하고 훈련된 인재가 ‘경륜을 펼쳐야 하는 자리’여야 함이 마땅하다.

우리는 면허증의 유무도 불확실한 초보 운전자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를 너무도 쉽게 내주고 말았다. 게다가 그의 ‘난폭’과 ‘음주’의 전력은 이미 백일하에 드러난 바 있다. 초보 운전자가 스포츠카의 성능에 도취 되어 ‘난폭 운전’과 ‘음주 운전’을 상습적으로 일삼는다면 그땐 나라의 불행을 어찌할 것인가?

‘난폭운전자’는 성격을 고쳐서 교정할 수 있고 ‘음주 운전자’는 술을 끊어서 교정할 수 있다지만, 마약보다 위험한 ‘주술에 세뇌당한 난폭음주 운전자’는 이미 교정의 범위를 벗어난 단계이다. 이런 자는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운전하는 행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해야만 한다. 반드시 적발과 동시에 구속함이 마땅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대미문의 주술에 빠진 초보 정치인에게 국가의 명운을 저당 잡힌 채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건곤일척의 도박을 벌이고 있다. 현명한 국민이 투표로 심판하는 것만이 누란의 위기를 벗어나는 길이다.

나의 한 표가 주술에 빠진 대한민국을 건져낼 위대한 능력이 될 것이다.

霞田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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