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산 걸은 날 숲 걷기가 사실은 개화산으로 끝이 아니었다. 방화역에서 지하철 타고 광화문 교보로 갔다. 이병도·신석호는 해방 후 어떻게 한국사학계를 장악했는가를 품에 안고 다시 버스를 탔다.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정류장에서 내려 잠시 생각했다. 가본 적이 없는 건너편 청룡산을 걸은 다음 곧장 집으로 갈까, 서울 둘레길을 따라가다가 강감찬 숲을 한 바퀴 돈 다음 샤로수길을 거쳐 집으로 갈까. 시간·거리를 헤아려 후자를 택한다. 그때는 알지 못했으나 이 선택은 이틀 뒤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강감찬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낙성대 표지석 앞에서 정화 의례를 행한다. 여러 번 걸은 방향과 반대로 서울 둘레길을 따라가다가 갈라져 강감찬 숲을 한 바퀴 돈다. 지도를 확인해 샤로수길로 들어간다. 생각했던 대로 젊은이들이 물결치며 흘러간다. 고깃집, 찻집, 그리고 의외로 타로 사주 보는 집이 주로 눈에 띈다. 웬만한 식당은 엄두도 못 내다가 일반 음식점이라 써놓은 ㅇㅇ식당 앞으로 갔는데 거기도 안팎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결국 일부러 사람 없는 샤로수길 이전모습 식당으로 들어간다.

 

밥과 소주를 주문하고 기다렸다가 제법 먹을 때까지 나 말고 다른 손은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절반가량 먹었을 때다. 갑자기 음식 맛과 술맛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까닭은 물론 전혀 모른다. 먹기를 멈추고 일어서 나온다. 심사가 묘하게 곤두선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생각은 그리로 향하는데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 이윽고 화요일 저녁 진료가 끝나 단골 백반집으로 가서 맥주잔에 따른 소주를 들이켠다. 벼락처럼 한 생각 떠오른다. 스마트폰으로 희석식 소주를 검색한다.

 

희석식 소주는 일제가 1899년 발명한 저질아니 가짜소주다. 싸구려 원재료를 발효시킨 뒤 연속 증류해 맛과 향을 모두 날려버리고 역한 냄새만 남은 주정에다 물을 타서 만든다. 역한 냄새를 감추려 인공감미료를 섞는다. 그렇게 오로지 취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알코올로 개돼지대중을 순치시킨다. 이 사악한 제국주의 부산물은 그대로 식민지 조선으로 번져간다. 관련법과 조세제도까지 바꿔가며 소주 시장을 석권할 수 있게 해준 조선총독부와 부역 대한민국 권력 덕에 희석식 소주는 소주 본진이 된다.”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지 못한다. 1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50년 넘게 이 희석식 소주를 마시며 순치된 개돼지로 살아온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서둘러 한의원으로 돌아와 비통하게 운다. 식민지에서 태어나 무지렁이 부역자로 살아가는 참담함이 이렇게까지 파고들다니. 가짜 소주, 그 알코올에 온 세포가 절 듯이 내 영혼도 절어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 싶으니, 통곡은 여간해서 잦아들지 않는다. 스스로 우는 소리를 감지하는 순간 그 소리는 더욱 크게 꺽꺽대고 만다. , 이제야 알겠다, 왜 맛이 사라졌는지.

 

나는 그 일요일 저녁부터 이 시각까지 일어난 일을 다시 한번 찬찬히 돌아보았다. 홀연히 희석식 소주가 내 제국주의 탐색 이미지에 포착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아니 모르긴 몰라도 가닿게 된 특별한 시공에 주의를 기울여 보았다. 물론 이성적·인과적 인식으로는 설명도 의미 부여도 당최 당치않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맞서는 일을 기조 삼은 내 삶에서 이런 소통로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를 팡이실이라 이름하며 그 실재를 이처럼 확인한다. 오랜 벗 희석식 소주, 이제는 그 우정을 끝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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