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여고생 시절부터 노후 걱정하는 환갑 나이에 이르기까지 사십 년 넘도록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제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젊어서 미국으로 이민 가 여러 풍파를 겪었지만 딸 아들 다 출가시키고 이제 안온한 여생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며 어째야 할지 묻는다. 나는 한의원에 살고 있는 나무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 왔을 때 그는 천정에 닿고도 남아서 가지 끝이 휘어져 내릴 만큼 컸다. 일조량과 영양이 부족한 상태로 살아가는 동안에 그는 점차 키를 줄였다. 지금은 나보다 조금 더 클 뿐이다. 큰 줄기 셋 가운데 하나는 7년여 전부터 더 이상 가지와 잎을 내지 않았다. 그렇게 13년을 살았다. 내가 해준 일이라고는 물 주기와 잎 닦아주기뿐이었다.

 

지난해 어느 날 도봉산 길 없는 깊은 골짜기를 헤매던 와중 찰나적 집중으로 담아온 흙 한 줌을 그에게 주었다. 몇 주 뒤, 놀랍게도 7년 넘게 가지와 잎을 내지 않던 줄기가 연두색 점 하나를 피워올렸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번져 여러 가지와 잎으로 자라갔다. 나는 매일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그렇게 올해로 14년째 함께 살고 있다.”

 

제자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얼른 알아들었다.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해결책이 있기보다 없는 경우가 더 많으며, 그럴 때는 해소책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여 주었다. 그가 어떻게 변화된 삶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 아니 어쩌면 특별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계기 하나 각별하게 품어 제 의례로 만들어 가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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