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걷기는 물론 평일 걷기까지 멈출 수밖에 없을 만큼 일주일 내내 허리가 불편했다. 그래도 극심한 증상은 많이 없어졌기에 가벼운 걷기를 다시 시작했다. 지선 버스를 타고 서울대 치과병원 앞에서 내려 강감찬 숲으로 넘어가는 둘레길을 탄다. 오른쪽 중둔근 상태가 여전히 신경 쓰여 느닷없이 절룩이곤 했지만, 꾸준히 천천히 걸었다. 뚜렷이 들려오는 도시 소음에 아랑곳 없이 숲은 전혀 다른 장소다. 아연 달라진 정서 상태가 증명해 준다.

 

주위를 초군초군 살피며 어머니 나무를 가려보기도 하고 버섯을 사진에 담기도 하며 강감찬 숲으로 들어간다. 길 아닌 숲 저만치 간버섯과 조개껍질버섯이 어우러진 나무 둥치가 돌연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슴없이 나는 길을 벗어난다. 어렵사리 접근해 어렵사리 사진에 담고 내친김에 아예 길을 놓아버린다. 얼마 못 가 이내 길과 맞닥뜨리고만 짧은 거리였으나 나는 오늘도 숲에 빙의되어 무아 시공에 머물렀으니,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현명하다.

 


도시에서는 더 천천히 걷는다. 허리가 불편해서기도 하지만 나만 지니는 탐색 이미지가 도시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기 위해서다. 5분이 채 되지 않아 시멘트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그만 버섯 조각이 눈길을 빨아들인다. 대체 이 버섯 조각이 어떻게 여기 있게 되었는지 차마 상상하기 어렵다. 낙성대공원 놀러 오거나 그 주변에 조성된 둘레길 걷는 사람 가운데 숲 자체에 관심 두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버섯이라니. 아니 그나마 왜 버렸을까?

 


이렇게 상상해 본다. 어린아이 하나가 숲 체험장에서 놀다가 이상하게 생긴 이 버섯을 호기심으로 딴다. 주머니 넣고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엄마에게 보이며 묻는다. 엄마는 무심히 대답한다. “무슨 버섯 같은데, 독버섯일지도 몰라. 얼른 버려!” 그런 생명체를 섬세히 들여다보는 내 눈에 띄어 거두어지도록 팡이실이가 작동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그럴싸하다. 가로수 가지 위에 없는 듯 있는 작은 새 둥지를 보아내는 내겐 말이다.


 

쉴 겸 점심 식사하며 마무리할 곳으로 서초구 미도산을 택한다. 미도산 주위에는 굵직한 랜드 마크가 여럿 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신세계백화점, 메리어트호텔, 서울 성모병원, 국립중앙도서관, 서초경찰서, 검찰청, 법원···. 그러나 미도산은 인근 주민조차 그 이름을 알지 못할 만큼 자그맣고 나지막하다. 하여 오늘에 알맞다고 본다. 본디 한자로 美都라 쓰는가 보지만 나는 味到라 고쳐 쓴다. 엄밀한 공부로 본성에 다다른다는 뜻을 담아서다.

 

이런 이름 짓기에는 내 삶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숲 걷기 제의가 진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미도산은 이음쇠 구실을 했다. 특히 버섯에 몰입할 때 이 아리잠직한 산은 언제나 경이로운 지성소였다. 크기, 높이, 이동 거리 대비 으뜸 효율로 나를 맞아주었다. 섬밀 무비 시공에서 내 제의는 탱탱하고 향 맑은 삶과 팡이실이를 이루며 더불어 번져갔다. 의도한 적은 없지만 나는 언제나 이 산으로 되돌아오는 여정 속에 있었다. 오늘에야 똑 깨닫는다.

 

깨달음은 각각 고유한 계기를 틈타기 마련이다. 미도산, 이 자그만 숲이 거느린 커다란 지정학적 위력이 나를 치명적으로 뒤흔든 적이 있다. 부역 권력이 내 일터를 무너뜨리고 삶을 망가뜨릴 때 미도산 주위 경찰서, 검찰청, 법원을 오가며 나는 피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나는 이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 모순 속에 나뒹굴었다. 여태 그러며 그 목숨줄에서 미도산 회귀가 이어져 왔다, 모순을 역설로 달여낼 깨달음이 문득 내게 묵음으로 오기까지.


 

올해로 60년째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하고 엄혹한 시기 10년을 미도산 발치에서 살았다. 20년 뒤에 또다시 돌아와 얼마간 살았다. 별별 험한 꼴을 다 당하다가 떠났건만 운명처럼 미도산 언저리는 여전히 내 주된 생활권이다. 관악과 백악 아닌 바로 미도가 내 반제국주의 전선 숲 본진이어야 맞지 않겠나. 중첩적 자기 전복을 이끈 팡이실이 서사가 이어 이끈 사건이 미도에서 일어났으므로 정색하고 천명 서사를 지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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