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궁에서 정릉까지 백악 남쪽 사면을 굽이굽이 넘어가는 길목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이 있다. 만해 한용운이 생애 마지막 10여 년을 살다가 운명한 집이다. 심우장이라는 이름은 서재에 걸려 있던 위창 오세창이 쓴 편액에서 왔는데 언젠가 없어지고 지금 것은 일창 유치웅이 쓴 글씨다. 심우는 불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뜻한다.




몇몇 글에 일부러 총독부 건물을 등진 북향집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반대 이야기도 있다. 비승비속으로 산 만해는 영숙이라는 이름을 지닌 딸을 두었다. 그 딸은 총독부 운운 이야기를 부인했다. 딸이 한 말이니 더 믿을 만하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딸은 심우장이 지어진 뒤에 태어났다. 나중에 태어난 어린 딸에게 일부러 말해주지 않은 이상 왜 북향집인지 딸은 알 리가 없다. 듣지 못했기에 모를 뿐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2012년 어떤 매체가 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가 아버지 사상과 작품, 그와 관련한 사회적 삶에 대해 그리 곡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주 흔한 일이다. 증조부에서 딸에 이르는 내 가족 5대만 살펴봐도 그렇다. 증조부 항일무장투쟁 얼과 삶은 아들은 물론 그 뒤 자손에게 옹골차게 전해지지 못했다. 평범한 인간사기도 하고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한 우리 사회 살풍경이기도 하다. 단재 신채호 며느리 이덕남은 특별한 예외다.

 

과거 인물을 둘러싼 서사는 현재 상황이 투영된 구성물이다. 만해를 영웅화하려고 원인론적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의 사실성을 전유할 권리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 문제라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만해가 어린 딸을 앉혀 놓고 혹자는 내가 총독부 건물을 마주하기 싫어 일부러 북향집을 지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지어낸 말이니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일은 얼마나 기이한가. 오히려 사실이 아니라손 치더라도 왜 그런 서사가 만들어졌을까를 상상하는 일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성숙한 자세 아닐까. 순수 사실만으로 조립된 서사가 이치상 존재할 수 없다면 모든 서사 가치는 개체별 진위가 아니라 맥락에 의거 판단해야 한다. 맥락은 생동하는 배치(agencement(F.)_들뢰즈) 사건의 다른 이름이다.

 

2023년 마지막 날 나는 백악 넘어 심우장으로 갔다. 만감을 되작거리며 한참이나 서성였다. 심우장을 나설 때, 대놓고 일제에 부역한 특권층이 다시 집권한 뒤 급변하는 나라 풍경을 떠올리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이 배치 한가운데를 흐르며 심우장이 왜 북향집인지를 어떻게 서사화해야 할까? 그 딸이 한 말처럼 성북동 지형상 다 북향집을 지을 수밖에 없어서 그리 지었다는 게 사실이라 인정해야 사실의 힘에 입각한 반제 전선이 굳건하게 세워질까? 녹으면서 질벅거려 더 미끄럽고 성가신 눈길 위에서 상념이 자꾸 뒤섞인다. 꿈에 보여 다시 찾은 신덕왕후릉을 다 돌아 나왔음에도 발길이 길게 뒤로 끌린다.

 

2023년이 속 시원히 떠나가지 않았는데 2024년은 이미 왔다. 이 글을 쓰다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 뉴스를 접했다. 국힘당 대전 신년회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 일을 언급하자 일부에서 환호성이 터지고 쇼입니다!” 했단다. 내게 이 환호와 말은 그렇게 서사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재빨리 대규모 수사팀을 꾸린 것도 그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