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끈 매고 나서도 한참 동안 현관 앞에 앉아 있는다. 갈 데를 정하지 못해서다. 경험상 이럴 때는 무조건 일어나 걷는 쪽을 택하면 된다. 평일에 늘 걸어서 넘어가던 산길을 따라간다. 살피재 지나 청림동으로 들어서면 옛친구들이 살던 봉천동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골목 풍경이 펼쳐진다. 그 위에 덮치듯 들어앉은 고층 아파트단지와 극적 대비를 이루며 나지막한 웅얼거림 소리를 낸다. 멈춘 시간 틈에서 나는 냄새를 곰곰 풍긴다.

 

까치산 숲으로 들어가 어머니 싸리나무를 뵙는다. 내가 본 싸리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되어 보호수로 지정할 방법을 찾아보았으나 결국 막혔던 싸리나무다. 그 사이 숲 관리인이 수관 절반을 떠받치는 줄기 하나를 베어버렸다. 그 탓인지 생명력이 다해 가는 듯, 돌꽃과 곰팡이가 큰 줄기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나는 물을 부어 드리고 속죄와 감사와 기원을 담아 간절한 마음으로 머리 숙인다. 주위 나무들도 바람 소리를 빌어 동참해 준다.

 

소곡으로 내려와 건너편 숲으로 들어간다. 거기 계신 어머니 참나무를 뵙기 위해서다. 인근 숲 네트워킹 허브로 믿어지며 자태가 수려하고 옹골지다. 이 정도 참나무는 실제로 50종 이상 생명을 품어 함께 산다. 예컨대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 속에 알을 낳는데 유충은 그 도토리를 먹고 자라며 성충이 되면 도토리가 열린 가지를 잘라내 적과(摘果) 작업을 해주어서 튼실한 도토리가 생산되게 한다. 나는 물을 부어 드리고 머리 숙인다.

 

까치산길을 따라가다가 중간에 나와 인헌시장으로 들어간다. 해장국으로 점심을 먹은 뒤 다시 능선길을 걸어 관악으로 들어간다. 마애미륵불 좌상이 새겨진 큰 바위를 조금 지난 곳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내 지성소 골짜기로 향한다. 본디 이름이 없는 골짜기지만 나는 이 골짜기를 은천골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 아래 마을에서 강감찬 장군이 태어났고, 장군의 아명이 은천이었기 때문이다. 골짜기와 물을 세심히 보듬은 뒤 숲에서 나온다.


 

안국사로 간다. 안국사와 안국문 현액이 아무래도 박정희 글씨인 듯해서 가보려 함이다. 내가 아는 박정희 필치와 일치한다. 직접 증거는 없으나 안국사가 1974년 정권 유지를 위한 상징 조작 고리로 박정희 지시에 따라 지어졌다는 기록을 보니 거의 분명하다. 그 의도와 무관하게 성웅 기리는 일이 잘못은 아니되 나는 이제 안국사 영정 말고 생가터(낙성대)와 거기 있던 석탑 앞에 서련다. 나라 구한 분과 배반한 놈, 구분은 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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