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 오늘따라 무슨 일인지 일찌감치 듬성듬성 자리가 빈다. 임산부 배려석 옆에 앉는다. 잠시 뒤 장년 여자 사람이 그 앞에 선다. 머뭇머뭇하더니 이내 앉기를 포기하고 옆 기둥을 붙잡고 선다. 다음 정류장에서 비슷한 연배 여자 사람이 탄다.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그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다. 그 자리 앉기를 포기한 여성이 옆에 서 있는 사실도, 임산부 배려석인 사실도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다.

 

내가 내리려고 일어서 한 걸음 채 옮겨 디디기도 전에 그는 내가 앉았던 자리로 이동한다. 두 사실 모두 알고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서 있던 여자 사람은 그 자리에 앉으려 몸을 움직이다가 또다시 포기하고 선 자세로 되돌아간다. 어찌 보면 그는 같은 사람한테 두 번씩이나 양보하기를 당한(!) 꼴이다. 이들이 기울어진 까닭은 견지한 명분이 아니라 명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다. 명분을 사유화하면 앉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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