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오늘 아침 일어나 북한산 계곡 순례 일정을 점검하는 내내, 같은 고민을 되풀이한다. 그동안 숲 걷기에서 길 잃고 길 내며 간 적이 허다하지만, 이번은 좀 다르다. 어떤 경로를 택하든 지도에 나타나 있지 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검색해 보니 무슨 보호 구역이어서 출입 금지라는 이야기도 분명하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오늘 가고자 하는 길은 북한산 북동쪽에 있는 안다래골에서 들어가 육모정 고개를 넘어 사기막골로 직접 들어가는 경로다. 고개라는 이름이 있는 이상 없을 수가 없는 길이 없다. 크게 우회하는 경로도 창릉천 상류 지점 이상은 길이 끊어져 있다. 보호 시설은 보안상 표시하지 않으니 그 또한 어디쯤 있는지 모른다. 계속 망설인 까닭이다.

 

어떤 불안은 감행을 독려하기도 한다. 나는 북한산 우이역에서 내려 거침없이 안다래골로 향한다. 안다래골은 처음부터 물길을 따돌리며 좁고 가파르게 이어진다. 골이 깊지 않은 대신 기암괴석이 군데군데 있어 짧아도 풍경은 나쁘지 않다. 재 마루에 육모정이 있었으니 이름이 그리 붙여졌고 도봉산 남쪽과 사기막골을 잇는 요로였으리라.



능선에 이르니 과연 출입 금지 표시판이 걸려 있다. 사기막골 쪽도 왕관봉 쪽도 모두 가지 못한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물 한 모금 마시고 이내 목책을 가로질러 길 지워진 숲으로 들어간다. 지도상 등고선과 실제 물길을 살피며 나아간다. 물길이 어려우면 벗어나 어슴푸레 인적 남은 길을 더듬는다. 2시간 뒤 창릉천 합류지에 다다른다.



창릉천은 바위 위로 층을 이루며 흐르는 작은 폭포를 포함해 풍경이 맑고 아름답다. 자기 굽는 가마터, 또는 절터에서 유래했다는 사기막골 이전에 본디는 청담(淸潭)이었는데 계곡물이 맑은 못을 이루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청담초당, 와운루, 농월루 같은 건물도 있어서 도성 인근 명승지로 뜨르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계곡 입구에 송시열 글씨로 보이는 <청담동>이란 각자가 있다. 도봉산 문사동 계곡에 있는 <도봉동문>과 체가 비슷하다. 실제로 청담동 계곡은 서인 노론 패거리가 송시열을 기리는 장소였다. 청담초당을 지은 사람이 그 제자라는 사실로도 확인된다. 도봉산 문사동 계곡과 이 청담동 계곡 사이 육모정고개가 우연만은 아니구나 생각한다.

 

작심하고 찾아온 여기서도 유서 깊은 부역 패거리 흔적과 만나다니. 분노와 허탈이 함께 들이닥친다. 하기야 어디 이뿐이랴. 청담동 계곡 아름다운 풍경을 점령한 부역 집단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강남구 청담동을 점령하고 있다. 아름다운 한강 풍경을 거느린 그 청담동과 이 청담동은 한자마저 똑같다. 이 청담동을 떠나는 발길이 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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