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사회 대가족 공동체에서 한가위는 참으로 대단한 날이었다. 그 한가위가 내 인생에서 사라진 지 제법 됐다. 60년 가까이 서울살이하면서 내가 도착한 종착역은 아내와 딸, 그리고 나, 이렇게 셋뿐인 도시 핵가족이었다. 자연스럽게 명절 개념이 증발했다. 설이 없어지니 세배가 없어지고, 한가위가 사라지니 송편이 사라졌다. 이제 가족에게 전혀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한의원 문을 열 수 있다니 서늘하다.

 

텅 빈 지하철 타고 썰렁한 골목길을 지나 한의원에 앉아 환자를 기다린다. , 물론 기다린다는 표현에는 문제가 있다. 나는 그저 글 쓰고 틈틈이 일어나 걷고 뭐 있나 하고 TV 화면을 곁눈질한다. 정오가 조금 안 된 시각에 한의원 건물 입구에서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들려온다. 직감으로 치매 앓으시는 어르신 모자임을 알아차린다. 어르신은 왜 간호사가 없냐고 물으신다. 한가위임을 모르시기 때문이다.

 

침 맞고 누워 계신 동안 아들이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한의원 와 침 맞고 상태가 잠시나마 호전되어 다리에 힘도 붙고 잠도 잘 주무시는 일이 어머니에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커다란 해방감을 준단다. 그 아내가 시달리던 편두통도 내가 생전 처음 보는 접근법을 쓴 덕에 좋아졌다고도 한다. 그가 내게 이토록 많은 고마움을 털어놓았던 적이 없었던지라 적잖이 놀랍다. 장인 모시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다.

 

명절날 진료소를 열어 놓고 있는 일이 의료인에게 결코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오늘 같은 예상 밖 일이 내가 명절에도 나와 적요를 견디게 하는 힘이다. 내가 진료하지 않았을 경우를 생각해 보면 오후 내내 텅 비어도 행복할 듯하다. 그가 다시 돌아와 포도 한 상자를 건넨다. 어느 때보다 그 눈빛이 촉촉함으로 반짝인다. 이제부터 한의원 올 때 즐겁게 놀러 온다고 생각하겠다며 어린아이 표정으로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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