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느질하는 사람이다. 직업이라는 말이 아니다. 요즘 사람, 더구나 남자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말이다. 자주 쓰는 흑백 실 꿴 바늘 두 개를 아예 책상 위 컴퓨터 앞에 놓아두고 있다. 양말, 장갑, , 우산, 모자, 목도리, 그리고 단추···무엇이든 해지고 찢어지고 뜯어지고 떨어진 곳을 수선 전문가에게 맡길 정도가 아니라면 손수 바느질해서 쓴다.

 

구멍 난 양말 꿰매는 내 모습이 아내 눈에 그리 좋은 풍경으로 들어올 리 없다. 아내가 꼭 그리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냐고 말할 때, 내 처음 대답은 이랬다.

 

양말이라는 사물에 예의를 표하는 내 방식이다.”

 

요 몇 년 동안 식물을 공부하면서 대답이 달라졌다.

 

양말이라는 이 사물이 발원한 식물에 경의를 표하는 내 방식이다.”

 

최근 곰팡이와 제국주의를 공부하면서 대답이 다시 달라졌다.

 

바느질은 팡이실이며 제국주의 반대말이다.”

 

김선우의 사물들<바늘, 숨은 자의 글썽이는 꿈>에서 시인은 말했다.

 

바늘은 자기 몸에 실을 꿰고 온몸으로 옷감-현실을 관통한다. 그리고 숨는다. 바늘은 현실에 깊숙이 관여하면서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바늘에게는 아상(我相)이 없다. 찢어지고 떨어지고 조각나고 해진 것들을 이어 붙이고 매달아 주고 기워주면서 자신의 존재를 타자 속에 스미게 한다. 바늘의 자아는 그 자신의 이름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이 이어 붙이고 부활하게 한 옷감으로 증명된다···

 

자기의 온몸으로 자기를 넘어가는 바늘의 흔적은 고요하다.”(86)

 

시인은 사물로서 바늘에 주의하면서 사유했고, 나는 사건으로서 바느질에 주의하며 사유한다. ‘온몸으로 옷감-현실을 관통자신의 존재를 타자 속에 스미게하면서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일이 여태껏 불려 온 이름은 네트워킹이었다. 이 말이 심각하게 오염되었다고 판단해 내가 만든 순우리말이 팡이실이. 팡이실이로 우리는 현실에 깊숙이 관여할 수 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지닌 근원 범주가 제국주의다. 제국주의에 깊숙이 관여하는 일은 제국을 해체해 작은 생명 팡이실이들의 팡이실이를 무한히 결 지고 겹 지게 하는 일이다.



여름에 진료할 때 입었던 하얀 한복 저고리가 워낙 낡아 손 쓰기 힘들 정도가 됐다. 조심조심 손빨래해서 조심조심 바느질했다. 두 여름은 더 입을 수 있겠다. 이로써 제국주의 붕괴가 두 여름 앞당겨졌다고 나는 주()한다. 내 주는 영검하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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