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사투리 쓰는 비중 있는 조역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무슨 연고가 있어서도 아니다. 마치 기본 설정처럼 으레 나와서 높은 진동수로 관객 귀를 훑어버린다. 재미 더하는 한 축이라 여기면 그만이지만 조폭 빼곤 대부분 경상도 사투리라는 사실에 이르면 문제로 삼아야 한다. 왜 하필 경상도 사투린가.

 

조금 더 문제를 확장하면 답은 절로 나온다. 경상도 억양을 쓰는 방송 진행자가 많다. 심지어 아나운서도 있다. 표준어가 존재하는 이유 가운데 정치적 음모가 끼어 있지 않는 한 공적 방송에서 사투리 억양을 여과 없이 내는 일은 잘못임이 분명하다. 문제 삼지 않게 된 사회적 기류는 모름지기 정치적 영향 아래 형성되었다. 대통령을 포함한 지배층에 압도적으로 경상도 출신이 많아 청와대나 재벌가 공용어에 경상도 사투리가 들어 있다는 말이 떠돌았었다. 이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사실상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수많은 사람 무의식에 유구한, 그러니까 저 신라적 우월감이 똬리 틀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상업적 드라마나 영화 대본을 쓰는 작가들은 누구보다 세태를 꿰뚫고 민감해야 한다. 그들 작품에 나타나는 어떤 생각이 당위냐, 현실이냐, 논란 여지가 있으나 대개 해피엔딩이라는 가짜 당위를 내세운 현실임이 맞다. 특히 인기 있는 드라마 작가 집단은 이 혐의에서 더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흐름에 정치적 요인이 좀 더 강하게 작용하면 급기야 드라마 주인공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날이 온다. 나아가 저녁 9시 뉴스도 경상도 사투리로 듣게 될 날도 온다. 정치판이 요즘 같다면 말이다.

 

2. 경상도 사투리는 높아져 봐야 결국은 식민지 말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제국 말이다. 일제를 거쳐 USA 제국 포식 언어에 포박된 상태로 나날이 생명력을 잃어가는 모국어에 극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실제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내력은 이렇다.

 

우리는 이미 오랜 세월 한자 식민지로 살아왔다. 우리 글이 없었던 탓으로 말하자면 불가피한 일이니, 식민지라 표현하는 일은 과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에도 5백 년 동안 한자가 공식 문자였다는 사실과 마주하면 유구한 특권층 부역 세력이 만들어 놓은 기득권 시스템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한글이 공식 문자인 현재도 여전히 한자-어는 한글-말과 상하관계를 유지하며 세력을 떨치고 있다. 이 바탕 위에 한자 의존도가 훨씬 높은 일본어가 들어와 식민 그늘은 더 어두워졌다.

 

일본어 식 말하기와 글쓰기가 깊숙이 자리 잡았고, 일본식 한자어가 우리식 한자어를 대체했으며, 일본 어휘를 우리 어휘인 양 쓴다. 일반 대중이 이런 오류에 휩싸여 있는 일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국어학자, 교육자, 전문적 글쓰기를 하는 지식인, 문학인, 언론·방송인 입에서 그런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일은 실로 참담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도리어 언어 대중을 오염시키니 말이다. 설상가상 미군정 이후 영어가 또 다른 지배 언어로 등극했다. 영어식 폭력은 더욱 큰 위력으로 우리 말글 목을 조른다.

 

말글 부역 본진은 물론 제국에 부역하는 특권층이다. 저들 내부 공식 언어는 당연히 일본어와 미국식 영어다. 유학을 통해 습득한 저들 종주국, 아니 조국 언어는 의당 다른 근본 없는” “들 언어와 결별해야 했다. 그리고 근본 없는 것들은, 일본어·영어식 한국어쓰게 하면 감지덕지할 일이라고 여겨 만든 조직이 다름 아닌 국립국어원이다. 공식적으로 표방한 목적과 일반인이 기대하는 바와는 달리 국립국어원은 어지러운 국어 상태를 고의로 방치 심지어 유도하고 있다. 그 결정적 증거가 표준국어대사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한글학회가 펴낸 우리말큰사전이 널리 쓰이는 길을 원천 봉쇄해버렸다. 이는 조만식을 위시한 자주 인사들이 민립대학 운동을 벌이자 이를 무력화하려고 일제가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했던 사건과 그 맥이 닿아 있다. 실제로 그 경성제국대학 부역 인맥이 국립국어원을 장악했고, 지금까지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출신 철밥통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국립국어원을 혁파하지 않으면 우리말은 말라 죽는다. 말이 죽으면 말 공동체도 죽는다. (이상 내용은 공시적 이야기-아베의 축원<말글 부역 서사> 일부를 가져옴.)

 

3. 정치적 중요성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생명 자체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는 진실과 마주친다. 반제국주의 서사 의학, 그러니까 녹색의학 이야기에 말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앵글로아메리카 제국 공용어인 영어 지배력은 제국주의 백색의학에서 더욱 강고하다. 의학 드라마를 보면 대뜸 알아차릴 수 있다. 조사 접미사 빼고 모든 말을 영어로 한다. 영어로 구축된 제국주의 백색의학 체계는 생명을 팡이실이로 인식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한다. 네트워킹 생명을 절멸시키는 거대 전략이 다름 아닌 제국주의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 언어는 생명을 팡이실이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말이다. 그 말에 가장 적합한 말이 우리말이다. 국뽕이 아니다. 수많은 근거가 있지만 세 가지만 언급한다. 첫째, 우리말은 동사 중심이다. 영어는 물론 명사 중심 말이다. 영어에서 형용사는 명사 수식어로 명사에 가깝지만, 우리말 형용사는 동사에 가깝다. 동사 중심 말은 세계를 정적 구조·실체로 이해하지 않고 동적 사건·과정으로 이해한다. 구조·실체는 사건·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한 양상일 뿐이다. 그 양상을 영속한 권력으로 둔갑시킨 이데올로기가 제국주의 백색문명 백색의학이다.

 

둘째, 우리말은 나와 너, 평등한 상호 주체 사이에 일어나는 비대칭 대칭 사건을 말속에서 구현한다. 그 증거가 바로 주어-목적어-동사 어순이다. 주어-동사-목적어 어순을 지니는 영어와 정반대다. 내가 하는 행동보다 그 행동 상대를 앞세우는 이 사유야말로 팡이실이 정신이다.

 

셋째, 이 부분은 매우 중대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합용병서(合用竝書) 원칙을 천명했다. 이렇게 하면 무려 400억 개 소리글자가 만들어진다. 이런 다양하고 섬세한 표현 자체가 창발적 생명현상을 풍요롭게 드러내는 길을 열어준다. 그런데 총독부에서 박정희 정권까지 이를 가로막아 40개 자모만 쓸 수 있게 가두었다. 이 과정에 참여한 학자, 대표적인 예가 특권층 부역자 최현배다. 최현배는 현재 건국유공자 반열에 올라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무늬만 독립 국가일 뿐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를 살고 있다.

 

4. 221은 국제 <모국어의 날>이다. 개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구성 요소이자, 공동체 생명·문화 구성을 담당하는 언어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다양성을 수호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정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 약 6,000종 가운데 절반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으며, 실제로 2주마다 1개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이상 내용은 공시적 이야기-아베의 축원<말글 부역 서사> 일부를 가져옴.)

 

언어가 사라지는 일은 생명 다양성이 사라지는 일이다. 제국이 노리는 바다. 제국에 맞서 생명을 한껏 펼쳐내 지구 생태계 파괴를 저지하려면 녹색 언어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언어공동체는 각기 자기 말을 지키고, 말들 사이 팡이실이를 만들어야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을 보탠다: 인간 너머 비인간 생명들이 하는 말도 이 운동 주체로 세워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진실을 누락시킨 채 또다시 인간중심주의로 내달려서는 안 된다. 고래도 버드나무도 송이버섯도 mycobacterium vaccae도 말을 한다. 인간 귀로 듣지 못한다고 해서 없다고 하면 안 된다. 귀가 아닌 다른 통로를 찾으면 된다. 아니. 어쩌면 인간이 백색 귀를 버리고 녹색 귀로 복귀하면 바이러스 말도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인간 DNA 적어도 8% 이상, 심지어 50%까지가 바이러스에서 왔다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