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도에 나오는 관악산 중앙계곡으로 향한다. 일명 수영장 계곡이라고도 부른다. 전에는 계곡 아래 서울대 수영장이 있었다. 물을 그 계곡에서 끌어왔음에 틀림없다. 진입로 계단길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인적이 끊어져 오히려 없어진 상태보다 더 을씨년스럽다. 게다가 출입을 금하며 위반 시 벌금을 낼 수도 있다는 경고판을 보니 살짝 정나미가 떨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깊숙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한눈에 보아도 작은 계곡이다. 물은 이미 말라버린 상태다. 조금 더 들어가자 물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물을 통제하려 쌓은 석축이 무너져내린 곳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다. 물길에 그런 식으로 손댄 석축이 여러 군데 보인다. 인간이 편의에 따라 변형시킨 숲 풍경을 나는 극도로 싫어한다. 숲에서 인간은 길, 그것도 최소한을 내야만 한다. 오늘은 능선까지 가지 않는다. 제의 공간으로 삼을만한 곳을 찾은 다음 훌쩍 뒤돌아 내려온다.



올라올 때 처음 물소리를 들은 곳에 이르러 건너편으로 넘어간다. 옆 계곡으로 가는 산자락을 돌기 위해서다. 물론 방향만 그럴 뿐 지도에도 없는 소로를 따라가면 목적지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다행히 전파천문대가 나오고 포장도로를 따라가니 저수지 계곡 입구가 나온다. 계곡 입구부터 술판 벌이는 사람들 왁자한 소리가 들려온다. 무심히 지나쳐 소음이 사라질 무렵에 이르자 물 흐르는 널따란 바위가 나온다. 여기도 제의 공간 후보지다.



 

물속에 발을 담가 체내에 쌓인 정전기를 흘려보낸 뒤 훌쩍 뒤돌아 내려온다. 이번에도 다시 옆 계곡으로 가는 산자락을 돈다. 마침 그 길은 한번 가본 길이다. 관악사 운동장 뒤로 난 관악 지리계곡으로 들어간다. 폭포에 이르러보니 이끼 위로 졸졸거리며 소량 물이 흘러내릴 뿐이다. 그 너머에서 저수지 계곡보다 더 큰 소음이 들려온다. 마침 일정에 따른 이동 시각이 돼서 여기도 제의 공간 후보지로 일단 낙점해 놓고 훌쩍 뒤돌아 내려온다.



관악산 북쪽 계곡 셋을 순례한 까닭은 내가 숲에 드나드는 목적과 부합하는 지성소가 있다면 찾아보기 위해서다. 낙성대 입구로 내려와 점심을 먹으며 아니라는 잠정 결론을 내린다. 다음 주쯤 내가 들고 나기로 정한 13, 14번째 마지막 계곡까지 가본 뒤 최종적 결론을 내리기로 한다. 관악산이 지닌 의미를 생각하고 숲이 건네는 말을 다 듣고서야 갈 길을 알 수 있으리라. 나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백악산으로 향한다. 백악산은 내게 상수다.



청와대 전망대에서 늘 하는 제의를 마친 뒤 다른 시선으로 서울을 내려다본다. 산 숲에 오는 까닭 하나를 홀연 깨달은 덕분이다. 산 숲에 서면 국적 없는 콘크리트 건물이 숲을 밀어내고 육중하게 들어찬 전경을 더 넓게 볼 수 있다. 그 점령이 얼마나 파괴적이며 절멸적인지 맹렬하게 실감할 수 있다. 거대한 부역 백색 도시를 통째로 직시할수록 내 우울증은 한층 건강하게 깊어진다. 이 깨달음만으로도 오늘 숲 걷기는 다시없는 축복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