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 후진 사회

 

내부고발자가 다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정도로 보상받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그러나 포상금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양심이 내부고발자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나는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일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라는 양심.···

  내부고발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며, 소송에는 평균 5년이 걸린다. 피터 로스트는 회사 사기행위를 고발한 내부고발자 233명이 어떻게 됐는지 조사했다. 90%가 해고되거나 좌천됐고, 27%는 고소당했고, 26%는 정신과 치료나 신병 치료를 받아야 했고, 25%는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17%는 집을 잃었고, 15%는 이혼했고, 10%는 자살을 시도했고, 8%는 파산을 겪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곤경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내부고발을 하지 않겠다고 답한 사람은 그들 중 16%에 지나지 않았다.”(402-403)

 

우리나라 경우 부패 범죄 조사가 개시되는 사건 절반 이상이 내부고발에서 비롯한다고 한다. 부패 통제에서 그만큼 내부고발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동시에 우리 사회처럼 내부고발 조건이 열악한 상태에서 이 정도라면 내부고발자 보호 질이 좋아지면 그 비율은 더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2011년 공익신고자보호법을 제정했다. 이 법이 공공기관에 국한해 적용하던 범위를 넓혀 민간에서 발생하는 공익 침해 사례까지도 넓혀 놓기는 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우선, 내부고발 대상이 정부·공공부문 중심이어서, 민간 부문은 건강·안전·환경·소비자·권익침해 등으로 국한돼 있는 점이 문제다. 분식회계, 배임, 횡령, 뇌물 등 중요 문제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상 범위를 현실화해야 한다.

 

그리고 내부고발자 보호 질이 낮은 것도 문제다. 최대 30억까지 보상해준다고 하지만, 실제 공공부문 내부고발자들이 받는 보상액은 5천만 원 미만 수준이라고 한다. 그 돈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인데, 누군들 감히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현실적인 문제는 신고자가 조직에서 생존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살아남는다 해도 좌천되고, 대개는 해고되는 상황과 걸맞지 않다. 조직을 떠나, 다른 삶을 시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약회사 내부고발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2016년 어느 언론에 보도된 유나이티드제약회사 전 수석연구원의 내부고발 사건을 보면 제약회사 행태는 여느 다국적 제약회사 그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보도는 보도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제약회사 내부고발은 희귀한 일임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사회 전체가 견지하고 있는 공적 윤리 의식으로 미루어보면 뭐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대통령이 사이비 무속인 손에 놀아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대다수 졸개는 내부고발은커녕 부역을 정당화하기에 급급한 사회 아닌가. 다른 일은 몰라도 이태원 참사 하나만이라도 내부고발이 있어야 적어도 상식은 통하는 사회다. “나는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일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라는 양심이 실로 160명 가까운 사람 죽이는 짓을 보고도 발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제약회사 내부고발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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