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단체가 환자를 단체로 죽인다

 

의약품 상술을 다루면서 환자단체를 언급하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다. 환자단체는 대개 거대 제약회사 자금 후원을 받는다. 그래서 제약회사와 같은 목소리를 낸다.”(185)

 

모든 인간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모든 인간이 법 앞에서 실제로는 불평등한 까닭은 이 말이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말에서 왔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말은 서구 제국주의 유일신교가 만들어낸 가장 큰 거짓말이다. 이치상 불평등한데 평등하다고 했대서 거짓말이 아니다. 평등을 균질로 인식했기에 거짓말이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균질화된 인간은 고유한 특성을 박탈당하고 오직 도구적 기회로서 존재할 따름이다. 이때 서구 기독교가 발하는 사랑은 자아를 사로잡은 결핍감을 채우려는 욕망이므로 그 대상은 이웃 인간이 아니라 사랑 자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이랜드라는 기독교 기업이 같은 신앙, 균질한 신앙인을 근거로 임금을 착취해 사회 문제로 떠오른 적이 있다. 문제는 사주만이 아니다. 임금을 착취당하면서 기꺼이 견딘 노동자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정반대 풍경을 상상하는 밝은 의식은 어두운 무의식에 덮인다. 같은 신앙, 균질한 신앙인이라는 대전제가 타자를 착취한다는 가해의식을 먹어 치운다; 타자에게 학대당한다는 피해의식을 먹어 치운다.

 

소규모 모임이나 사업장에서 서로 가족 호칭으로 부르는 행위도 여기에 해당한다. 유사 가족 의식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뒤에 도사린 늪을 모르지 않으면서 빠져든다. 혼인으로 맺어지는 가족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결혼식 가면 주례한테 흔히 듣는 말이 있다. 며느리라 생각 말고 딸이라 여겨라, 사위라 생각 말고 아들이라 여겨라. 그 결과가 대부분 어떻게 나타나는지 모를 수 없는데도 여전히 불패 덕담이다.

 

트인 눈으로 저간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누가 어떻게 상전으로 군림했고 누가 어떻게 종노릇을 해왔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상전 노릇 한 자들은 걸핏하면 조국과 민족을 들먹이며, 하나라고 속삭이며 등골을 빼먹어왔다. 종노릇 한 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제 살을 베어가며 그 하나를 지키는 일이 도리라고 믿어왔다. 그 잔혹사는 자신감에 눈이 먼 두 인간 패악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다. 하나라는 허위의식에서 놓여나야 한다. 피차 다른 그래서 깎듯이 존중해야 하는 존재임을 전제해야 비로소 하나가 지닌 참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같다고 포개 놓고 착취·살해하는 제국주의 속임수를 깨뜨려야 살 수 있다.

 

어리석기 짝이 없으면서도 자신감에 가득 차 제 공동체 등골을 파먹고 있는 특권층 부역 집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민함으로 무장한 제국 제약회사가 균질화 마케팅을 놓칠 리 없다. 환자단체를 매수, 심지어 설립해서 환자를 단체로 죽이고 있다. 환자단체는 가해의식이 없다. 단체로 죽어 나가는 환자는 피해의식이 없다. 이 무지를 아는 제약회사만이 미소를 머금은 채 돈을 쓸어간다. 바로 그 돈으로 산 독극물이 팔만 뻗으면 바로 손에 집히는 한 우리 모두는 믿으면서 웃으면서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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