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부역 서사
1. 개신교는 고대 근동 예수 공동체에서 출발해 유럽 대륙을 관통하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까지 오는 동안 가장 극렬하고 배타적인 신념 집단으로 태어난 기독교 내 종파 이름이다. 근대에 이르러 제국주의 논리와 결합한 신학으로 무장하고부터는 가장 잔혹하고 뻔뻔한 살해 집단으로 거듭난 기독교 형 정파 이름이다.
우리는 이미 『육두구의 저주』를 통해 개신교가 앵글로아메리카 제국 정착형 식민지에서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다. 저들이 키워낸 일제 식민지 조선 개신교가 별다른 선택을 했으리라 상상하는 일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그 부역 풍경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전에 이 문제를 개신교 내부에서 어떻게 보는지부터 살펴본다. 목원대학교 김흥수 교수가 쓴 글 <“친일·전쟁·군사정권”: 한국교회의 반성>(기독교사상 2005년 8월호) 일부를 소개한다.
“해방 60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교회가 일제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신앙훼손과 반민족행위를 철저하게 회개했다는 데 동의하는 이는 없다. 교회의 친일문제 청산과 관련해서 오늘날 교회 안에서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 먼저 철저한 반성과 일제잔재의 철저한 청산을 요구하는 입장이 있다. 이를 대변하는 인물은 이만열 교수이다.
그는 친일의 문제를 한국교회의 원죄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 해방 후 한국교회는 일제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신사참배와 태양신에 대한 굴복을 철저하게 회개하지 못하였다. 그 까닭은 한국교회가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거듭날 기회를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교회와 사회의 차별성이 없어졌다. 이로써 한국교회는 해방 후 한국 사회의 친일파 제거를 비롯한 일제 잔재의 청산을 강하게 부르짖을 수 있는 예언자적 기회를 민족사에서 영영 상실하고 말았다. 그 결과 다른 친일파들이 보신을 위해 의지했던 극단적 반공 이데올로기에 편승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 연관된 북진통일론으로부터, 또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나아가서는 자본주의적 물신주의로부터 자신을 해방, 단절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기독교가 괄목할 만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하나님 이외의 어떠한 존재나 가치를 상대화하지 못하고 사회 속에서 기독교적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단절과 부정이라는 철저한 청산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만열은 일제 잔재의 철저한 청산을 요구한다.
또 하나의 입장은 친일의 문제를 기독교의 정체성 확립 차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교회 제도의 유지 차원에서 바라보는 민경배 교수의 관점이다. 그는 몇 해 전 『정인과와 그의 시대』(2002)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민경배는 “장로교 황민화의 선봉장”으로 비판받고 있는 정인과 목사를 일제 말기의 형언하지 못할 시련 속에서 한국교회를 걸머지고 가야 했던 한 대역자(代役者)로 정리한다. 정인과는 일제 말기에 교회의 조직과 기구로써 신앙을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할 때 우리 역사에 보내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정인과가 없었더라면 한국교회는 일본적 교회가 되고 장로교 체계가 소실된 일본 교단이 되었을 것임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민경배는 일제 말기 종교탄압에 대해 네 가지 유형의 대응 자세가 있었다고 하는데, 정인과는 마지막 유형에 속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순교이다. 그것은 몇 사람의 영광된 길이나 기독교인 전체가 따르기에는 불가능한 길이었다. 다음은 은둔의 길이다. 해외로 숨거나 산야에 묻히는 일이다. 거기 공교회의 현실적 아픔은 없다. 세 번째 유형은 실질적인 친일파로 경찰서와 헌병대를 찾아다니면서 한국교회를 일제의 제국교회에 통합하려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두세 사람에 불과하다. 마지막 유형은 정인과처럼 흔히 친일파로 불리는 교회 지도자들인데, ‘조절’과 현실적 교회 유지의 자세를 취했던 사람들이다. 조절이란 일제 천황의 궁성을 향하여 소위 동방요배를 하고서야 비로소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종을 떼다 무기 만드는 데 바쳐야 하는 행위로 나타났다. 그러나 바로 그 사람들이 거대한 전국적 조직의 교회와 기독교기관을 유지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교단과 대학의 책임자들로서는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이것들을 유지하려면 종교 행위를 일제의 요구에 알맞게 맞추는 ‘조절’ 이외 다른 방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무명의 개인과는 그 선택의 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들이 오늘날 심판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오히려 부둥켜안고 함께 눈물을 흘려야 할 일이며, 이제 조절의 신학을 선교와 민족 신학으로, 가부간에, 검토하고 반성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민경배 주장은 새롭지 않다. 다른 분야에서도 익히 듣던 논조다. 생략해도 될 법한 이 문제를 하필 여기서 꺼내는 까닭은 들머리에서 말했듯 개신교가 다른 세속 분야와 다른 정체성을 지닌다고 스스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기 정체성에 비추어 볼 때, 일제에 부역해서라도 유지해야 할 “거대한 전국적 조직의 교회와 기독교기관”이란 과연 무엇인가? 장로교가 신봉하는 그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가?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할 수 있는가? 자가당착 무인지경이다. 개신교 논리 근저에는 이런 한심한 무지가 판치고 있다. 전광훈 같은 자가 날뛰는 일이 가능한 오늘날 개신교 살풍경이 어디서 발원했는지 알고도 남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