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관악산이다. 여느 날보다 조금 일찍 출발해 서울대 교정 깊숙이 들어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종점에서 내려 서울대 저수지가 있는 골짜기로 걸어 들어갔다. 조금 들어가다 개울가에 버드나무 가지를 심었다. 큰절 올렸다.



서울대학교 정문은 서울대학교 교표 조형물이다. 왼쪽부터 읽으면 국립서울대학교고 오른쪽부터 읽으면 경성제국대학이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경성제국대학 출신 특권층 부역 집단이 지닌 자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국립 서울대학교는 경성제국대학 연장선에 있다. 아니. 이름만 바꾼 제국대학, 그러니까 특권층 부역 집단을 재생산하는 식민 통치 미래 본진이다. 일요일이라 인적이 거의 없는 교정을 걸으며 나는 무겁게 슬프게 빌었다: 서울대학교를 정화해주소서. 내가 개울가에 버드나무 가지를 심고 큰절 올린 제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골짜기로 올라가면서 이상하리만치 나는 여러 번 길을 잃었다. 마지막에는 무엇에 홀린 듯 스마트폰 지도로 방향을 확인하는 일조차 까맣게 잊은 채 개울을 넘나들며 마침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되돌아올 수 없는 곳에 다다르고 말았다. 그제야 스마트폰 지도로 확인하고 남들에게는 길 아닌 길을 걸어 연주대 코밑 능선에 도착했다. 능선길에서 나는 특별한 인연과 마주했다. 길가, 아니 길 위에서 삶을 시작한 버섯이 행인 발에 차여 부서진 채 흩어져 있었다. 대부분 으스러졌는데 가장 작은 몇 개체가 뿌리는 뽑혔지만 제법 성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그들을 수습해 속이 비어가는 고목에 심어주었다. 버섯을 심기는 처음이었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그들 목소리에 끌려 길을 잃지 않았나 싶었다. 길을 잃지 않았다면 갈 생각이 전혀 없었던 러시아워처럼 붐비는 능선길에서 여차하면 짓밟혀 흔적으로만 남았을 그들을 만났으니 말이다.



나는 부드럽게 떨리는 가슴을 도닥이며 내려가는 길, 그러니까 관악산 속 지리산 골짜기로 향했다. 처음부터 헷갈리더니 마침내 또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다. 이때도 스마트폰 지도 보는 일을 잊고 한참을 나아갔다. 더 나아가면 본디 가려던 길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판단이 서는 순간 나는 길에서 이탈해 관악·지리산 골짜기를 향해 직선으로 내 길을 내기 시작했다. 찔리고 긁히고 미끄러지고 빠지고 가던 길을 되돌아오기를 되풀이하며 가던 어느 순간 시야에 본디 가려던 길 풍경이 쑥 하고 들어왔다. 다행히 이번에도 낭떠러지가 길을 막지는 않았다. 개울가로 내려가 옷매무새를 고치고 얼굴과 손을 씻은 다음 서울대 저수지 가까이 서 있는 커다란 버드나무에서 모셔 온가지를 안전한 곳에 심었다. 큰절 올렸다.



관악산은 백악산 객산으로 외세, 그러니까 제국을 뜻한다. 버드나무 심고 큰절 올린 내 제의에는 제국과 특권층 부역 집단이 자기 풍요를 위해 더는 식민지를 착취·살해하지 말고 지구 생태계 전체가 공생 네트워킹 되게 하는 일로 나아가기를 비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제의를 숲에서 행하는 뜻은 이렇다: 제국주의 살해는 결국 옴니사이드에 이를 텐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에코사이드가 임계점을 넘지 말아야 하고 에코사이드가 임계점을 넘지 않으려면 숲이 반제국주의 전선에 으뜸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관악사 운동장 가까이 이르자 포크 로더 기계음이 거세다. 크고 작은 테라포밍에 영일 없는 이 식민지 땅, 이젠 정말 징글징글하다. 제국주의 공부와 부역 서사 쓰기에 깊이 잠길수록 우울과 침묵이 육중해진다. 익사하지 않으려면 나무가, 풀이 내게 전하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부디 이 초록 만신 귀 좀 열어주시기를 빈다.

 

서울대학교 교정을 떠나면서 생각에 잠긴다. 서울대학교를 관악산으로 옮긴 이유가 뭘까? 당시 들려왔던 유언비어는 서울대 학생들이 반독재 시위를 자주 하니까 관악산 드센 기운으로 학생들 저항기를 꺾으려고 박정희가 시켰다, 뭐 이런 얘기였다. 이 유언비어가 다만 유언비어는 아닐 테다. 나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간 주술을 상상한다. 제국 첨병, 식민지 특권층 부역자를 낳고 키워내기 위해서 객산 자궁과 품에 앉혀 놓았다, 이렇게 말이다. 웃자고 하는 말 아니다. 실제로 오늘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사건 아닌가. 소름 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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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2 1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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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3 0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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