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서울을 벗어났다. 그래봐야 파주 근처였지만 제법 즐거운 나들이였다. 가족과 헤어져 나는 북한산으로 향했다. 국민대학교 교정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진입로로 들어가서 형제봉을 돈 다음 북한산 둘레길 명상 구간 일부를 걷다가 갑자기 나는 길 아닌 산비탈로 들어섰다. 스마트폰 지도를 보면서 청학사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였다. 여러 번 이런 행동을 해와서인지 두려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청학사에서 발해진 사람 목소리가 들리기까지 미끄러지고 가시에 찔리고 직진 불가능한 지형 탓에 이탈했던 경로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차분히 최단 거리를 찾아냈다. 마침내 아주 작은 도랑물 건너편에 청학사 가는 길이 눈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근처에는 인적이 없었다. 바위 위에 앉아 땀을 닦고 옷매무새를 고치면서 내가 오늘 여기 온 까닭을 다시 확인했다.

 

북한산과 백악산 경계, 동쪽 정릉동과 서쪽 평창동 사이에는 본디 고갯길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지금처럼 북한산 둘레길 제5구간 명상길 일부와 겹치는 길이 아니라, 청학사와 현재 평창동 형제봉 통제소를 잇는 최단구간 고갯길을 상상해 보았다. 바로 그 상상 지점 어름에서 나는 오늘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제의를 실행할 생각이었다.

 

첫째, 북한산에서 콩과식물인 싸리나무 묘목을 채취해 백악산에 심는다. 이는 북한산 큰 생명 기운을 백악산에 보태어 너른 공생을 꾀하려 함이다. 콩과식물은 척박한 땅에 먼저 들어가 질소 고정으로 공생 조건을 만들어 선물한 다음 마침내 표표히 사라지는 Pioneer, Networker, Releaser. 길가이긴 하지만 볕이 잘 들고 웬만한 물기운엔 견뎌낼 만한,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이 가까이 있는 곳에 조그만 싸리나무를 심는다. 누구도 해코지할 수 없게 주위를 시침 뚝 딴 풍경으로 되돌린다. 물론

 

그대로 했다. 큰절 올렸다.



둘째, 북한산을 나오자마자 백악산 들머리에 있는 개울가 바위 뒤에 버드나무 굵은 가지 토막을 심는다. 무슨 전설처럼 거기서 싹이 나 큰 나무로 자라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버드나무는 콩과식물과 마찬가지로 Pioneer, Networker, Releaser. 다만 콩과식물과는 달리 땅을 정화함으로써 공생 조건을 만든다. 이런 본성이 백악산 기운에 고루 가 닿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을 담는다. 비교적 깊게 땅을 파고 묻은 뒤 다음에 와서 알아볼 수 있도록 표지목을 나만 알아차리는 모습으로 세워 놓는다. 물론

 

그대로 했다큰절 올렸다.



 

현대 과학적 논리로 따지면 내 제의에 담은 소망은 이루어질 리 없다. 나는 인과관계 너머 창발로 일어나는 네트워킹 실재를 신뢰하므로 이 일을 한다. 내 신뢰는 경험적 근거를 지닌다. 그런 경험으로 점철된 삶을 70년 가까이 이어왔다. 산 날보다 죽을 날이 훨씬 더 가까운 오늘 나는 내 생을 제국주의가 인류학으로 설명하는 짓을 관대히 허락한다.

 

이 관대함은 공명정대함을 포함한다. 나를 인류학으로 설명하려면 제국 시민도 인류학으로 설명해야 한다. 제국 시민에게도 인류학적 삶이 엄존한다. 이때 인류학은 제국주의 본성인 이원주의, 과학주의, 이성주의, 서구(특히 앵글로아메리카)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남성·가부장주의, 백인주의, 이성애주의, 비장애인주의 따위 온갖 비진리를 거절하는 반제국주의 담론을 뜻한다. 반제국주의 담론으로 제국 시민을 설명하면 혁명을 달리 상상할 필요가 없다. 나는 오늘 반제국주의 담론 주체이자 현장으로 백악산과 북한산 경계를 초대한다. 내가 백악산에 정화 기운으로 가 닿으려 한 뜻은 청와대 주인 행세하는 특권층 부역 세력을 백악산과 협력해 정화함에 있다. 내가 북한산 너른 공생 기운을 백악산에 이어주려 한 뜻은 객산, 그러니까 제국 격인 관악 기운이 백악을 제압하지 못하게 함에 있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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