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북한산 둘레길 중에 평창동을 통과하는 구간이 있다. 처음 북한산 둘레길을 걸을 때 그 구간 많은 부분을 일부러 생략했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숲이 아니라는 점이 하나였고, 평창동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다른 하나였다. 내 어릴 적 기억에 평창동은 도둑촌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유서 깊은 부자가 사는 동네인데, 그 육중한 부가 죄다 도둑질에서 왔다는 고발을 담은 표현이었다. 유서 깊다는 말은 전혀 빈말이 아니다. 신라 김춘추 집단부터 시작된 매판 부역 집단이 천오백 년 가깝게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면 명실상부한 표현 맞다.

 


제국주의 공부를 막 시작할 무렵 나는 반대로 일부러 평창동 길을 걸었다. 눈이 아프도록 그 으리으리한 집들을 보고 또 보았다. 거기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특권층 부역자 체취를 통렬하게 맡았다. 평창동을 떠나면서 생각한다. 아베의 저주는 아무래도 누군가 날조한 저주가 아니지 싶다. 적어도 식민지 노예 교육에 관한 한 실재에 너무나 잘 부합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베의 축원이 결국 이렇게 영검한 저주로 돌아오는 이치를 꿰뚫어 본 네트워킹 웅얼거림이 아닐까.

 

축원과 저주가 동의어인 식민지 대한민국에서 교육 서사는 그 무엇보다, 그 누구에게나 날 선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교육이 현재에 미래를 말하는 행위며 구조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권층 부역 집단이 모조리 장악한 교육체제, 교육기관, 교육당사자, 어디에서도 이런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럴 리 없으니 그럴 수 없다. 변방에서 각성한 부역자가 그 문제의식을 네트워킹으로 공유하는 길이 유일한 길이다. 네트워킹은 패자 공동체다. 패자 의식을 호혜적 삶으로 구현한 작은 존재가 빚어내는 나지막한 연대만이 교육 혁명 서사를 쓴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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