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m 넘는 용문산을 마지막으로 산행에 해당하는 숲 걷기를 멈춘다. 더 가면 내가 숲에 들고나는 목적과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다. 홀가분하게 다녀올 수 있는 길을 고른다.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까치 능선까지 간 다음, 생태 다리 두 개로 관악산과 연결해 놓은 길을 따라 숲 깊숙이 들어간다.



걷기 쉬운데다가 계곡 물소리가 들려 좋기는 한데 시끄럽다. 산악회 무리가 지나가면서 숲 전체를 흔들어댄다. 날카로운 영남 사투리는 특히나 귀에 거슬린다. 서둘러 능선에 올라 얼마쯤 걷다가 마당 바위를 지나자마자 길인지 아닌지 구분이 잘되지 않는 소로로 접어든다. 얼마 가지 않아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래, 이런 숲이어야 한다! 사위가 고요에 잠기자 비로소 내 몸과 공생하는 미소 생명들이 숲 생명들과 나누는 속삭임이 들려온다. 살짝씩 길을 잃어가며 걷는데 물소리가 들려온다. 홀린 듯 다가가 물과 놀며 옮아가다 보니 또 길이 아니다. 애써 길을 찾고는 다시 물에 홀린다. 손 넣어 만지고, 한 움큼 떠먹고, 야릇한 충동에 휘감기며 이리저리 물길을 감듯 넘나들며 계곡을 내려온다.



인적 없는 상태로 한참 내려오다가 홀연 인기척을 느낀다. 나뭇가지에 가려져 있다 모습을 드러낸 인상 좋은 남자 사람 하나가 개울 건너편 바위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눈길이 마주치자 그가 묻는다. “정상 쪽에서 내려오시는 길입니까?” 내가 그렇다고 하자 그가 말한다. “대단하시네요!” 그 흔한 등산화조차 신지 않고 평상복 차림으로 산 타는 늙은이 모습을 보고 그리 말했으리라. 내가 말한다. “이 길 너무 좋습니다.” 그가 답한다. “여기가 관악산 속 지리산입니다. 아는 사람 거의 없지요.” 과연 그렇다 싶다. 인사를 나누고 조금 내려오니 제법 낙차 있는 폭포가 기다린다. 거기서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서울대 학생 생활관이 있다. 학생들이 관악산 속 지리산을 알면 좋으련만.

 

먼발치에서나마 강감찬 사당 향해 합장하고 식당을 찾는다. 한참 돌다가 비교적 큰 골목에 왜 보지 못했을까 싶게 떡하니 있는 추어탕집으로 들어간다. 어이쿠, 여기도 영남 사투리가 점령하고 있다. 물경 개신교도다. 여남은 명 앉아 큰 소리로 식사 기도하고 큰 소리로 정치 얘기한다. 나는 애먼 막걸리 맛이나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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