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제일봉은 백운(白雲)이다. 높이로만 따지면 가섭(1157m)이지만 자태나 전망을 고려해서 이렇게 평하는 다산 선생 이외 여러 사람 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2023년 4월 30일 나는 사나사(舍那寺) 계곡으로 들어가 백운봉 ‘아미(蛾眉)선’을 스치고 연수리 계곡으로 나와 그 으뜸 생태에 극적으로 휘감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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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중앙선 오빈역에서 내려 마을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고 작은 재를 두 개 넘어 크게 헤매지 않고 사나사에 도착한다. 스마트폰 지도에 그려진 길이 정확하지 않아 계곡 길로 진입하는 입구를 찾을 수 없다. 나는 여러 번 그랬듯 방향만을 정확히 잡고 없는 길을 만들며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동안 여러 번 되풀이해온 행동이지만 사실 그때마다 무섭다. 아무리 낮아도 산은 언제 어디서나 치명적일 수 있다. 아득함과 싸우며 헤매는 와중에도 스마트폰 보고 방향 확인하는 일을 수시로 해 큰 동선을 만들어가던 한 순간, 계곡 물소리 낭자한 어느 지점 건너편에 길처럼 보이는 풍경이 와락 다가든다. 정신 바짝 차리고 개울을 건너니, 아! 본디 가려던 그 길. 한 시간 이상 가파르고 험한 산비탈을 헤매고야 만나다니. 그다음, 길 따라 올라가는 일이지만 여간 어렵지 않다. 경사가 심한데다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않고 평상복 차림으로 인적 전혀 없는 산을 오르자니 더욱 위험하게 느껴진다. 마침내 도달한 능선 구름재. 거기서 다시 백운봉을 향한다. 능선길 또한 무섭다. 발 디디는 곳 너비가 30cm 정도밖에 안 되는 곳이 수두룩하다. 조금만 방심하면 절벽 수준인 좌우 골짜기로 굴러떨어질 판이다. 숙의 치료할 때 내담자에게 해주는 말, 그러니까 감정 상태를 평가 없이 그대로 인정해 소리 내어 말해주라는 말을 그대로 내게 한다: “무섭다.” 연수리 계곡과 갈라지는 지점에 이르러 겨우 물 한 모금 마신다. 정상을 밟지 않는다는 내 식 예절에 따라 이내 내려가기 시작한다. 어렵긴 마찬가지다. 밧줄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간이 제법 된다. 길 잃을 위험은 없지만, 바닥에 온갖 모양으로 나뒹구는 돌덩어리가 잠시도 방심하지 못하게 한다. 너무나 배가 고파 뭘 좀 먹어야겠다 싶은데 아연 길이 편해지기 시작한다. 그 뒤로는 시원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고요히 숲을 나온다. 길게 이어지는 연수리 마을 길을 따라 걷고 걸어 용문역에 도착하니, 출발한 지 꼬박 여섯 시간이 지난 오후 4시 40분이다.
용문산은 높이에 비해 품이 너른 큰 산이다. 골골이 뭇 인간이 깃들어 살아간다.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인간이 어떻게 그 관대함을 악용해 깃듦 너머 파고듦으로까지 나아갔는지 아프게 확인할 수 있었다. 도처에 전원주택, 웰빙 또는 테마 빌리지, 별장이 어떻게 숲에 ‘쌩 까는’ 살풍경을 그려내며 번져가는지 숲은 인간 귀로는 듣지 못하는 신음과 울음소리로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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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는 숲에 들어가기 전과 숲에서 나올 때 감정 상태가 사뭇 달랐다. 용문산 백운봉 숲은 그렇지 않았다. 앞뒤로 기나긴 테라포밍, 저 악명 높은 자국 정착형 식민주의 행진을 똑같이 목격했기 때문일 테다. 어떻게 이리 속살까지 파고들며 자기 나라를 스스로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을까? 그 장애 상태 정신과 역동은 어디서 왔을까?
문재인 정부 초반, 전 일본 총리대신 아베 신조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무역 침략을 도발한 적이 있다. 이 무렵 다시 온라인을 떠돌던 <아베 총독의 저주>라는 짤막한 글이 있었다. 심지어 일본어 원문까지 인용했다. 물론 이 글은 가짜다. 이 아베가 그 아베의 외조부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친일파가 여전히 지배층을 형성하고 있는 와중에 일본 총리대신이 벌인 악의적 도발이라 비분강개한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어떤 시민이 과장되게 부연하고 새로이 만들어서 유포했으리라.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일은 물론 옳지 않다. 그러나 <아베 총독의 저주>는 마냥 날조된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그는 맥아더 사령부가 1945년 12월 도쿄에서 행한 심문에서 “일본이 점령한 35년 동안 한국은 상당히 발전했다.”, “일본은 한국에 아주 좋은 정책을 취했다.”라고 답변했다. (영문 <아베 노부유키 심문서>)
식민지를 다스린 제국 관료와 부역자가 지닌 생각을 그대로 드러낸 발언이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정리하자면 아베 노부유키 발언은 식민 정책이 과거에는 축복이었고 미래에는 축원이라는 의미를 띠게 된다. 즉 앞으로도 일제가 취한 아주 좋은 정책대로 하면 계속 발전하리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일제 패망과 더불어 등장한 미군정이 체계는 물론 인물까지 식민지 관료와 부역자로 채운 대한민국 기초 구조가 아베 노부유키 정책 연장선에 있었다고 판단하는 데 무리는 전혀 없다. 그렇다. 내가 용문산 백운봉을 드나들며 목격한 저 참담한 테라포밍은 다름 아닌 일제 “좋은 정책”, 그러니까 아베의 축원에서 발원했다.